[Ki-Z 영화人] 故강민호 아들 강성하 “스타2세 특권? 14년 전 밑바닥부터 시작”

[Ki-Z 영화人] 故강민호 아들 강성하 “스타2세 특권? 14년 전 밑바닥부터 시작”

기사승인 2010-08-21 13:03:00

"[쿠키 연예] 지난 12년 동안 영화 <추격자> <국가대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을 거치면서 선 굵은 연기로 ‘실력파 배우’ 반열에 오른 하정우. 베테랑 연기파 배우이자 부친인 ‘김용건의 아들’보다는 평범한 배우로 먼저 인정받고 싶어서 김 씨 대신 하 씨를 선택해 무명 시절을 보냈던 그. 하정우처럼 고 강민호의 장남 강성하도 ‘국민스타’였던 선친의 이름으로 누릴 수 있었던 ‘스타2세’ 후광을 버리고, 대중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서 밑바닥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강성하의 부친인 고 강민호의 이력은 화려하다. 드라마 ‘형사기동대’ ‘사모곡’ ‘삼국기’ ‘전우’ 영화 <빨간 마후라> 등에서 카리스마 연기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배우’였다. 특히 1975년 방영된 KBS 드라마 ‘전우’ 촬영 당시 일등중사 분대장 ‘이현중’ 역의 남자 주인공 인 라시찬과 함께 늠름한 모습을 과시했으며, 1980년 ‘전우’가 리메이크 될 당시에는 라시찬이 맡았던 남자주인공 자리를 거머쥐며, 외출 한 번 마음대로 하기도 어려운 ‘대중의 우상’이 됐다.

“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와서 사인해달라는 요청이 기억나요. 밀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 사실 아버지가 부끄러웠어요. 남들은 아버지가 연예인이라고 좋아한다고 하던데…. 전 모랄까,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랑 손을 잡고 가다가도 사람들이 말을 걸려고 다가오면 뒤에 가서 숨어 있었죠. 지금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소극적 아이었죠”

강성하는 어린 시절부터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숫기 하나 없었던 그가 결국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을 걸 보니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뇌출혈로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부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 이제 내가 가장이구나. 가족과 나를 위해서라도 강해져야겠다’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저와 쌍둥이 남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어깨가 무거우셨을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TV를 봤는데 친구가 출연하더라고요. ‘어 나도 할 수 있겠다’ 막연한 자신감과 ‘배우가 내 길이다’ 확신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예학원 열린 오디션에 응시하게 되면서 배우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오디션 원서를 쓸 때 부친의 이름과 직업란에 기재하지 않았다. 일단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끼를 물려받았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길을 직접 닦아온 강성하는 지난 1996년 SBS 청소년 드라마 ‘성장느낌 18세’ 출연을 계기로 연기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심은하와 이병헌이 출연했던 SBS 특집 단막극 ‘나는 원한다’를 비롯해 SBS 드라마 ‘덕이’, ‘오남매’ KBS 단막극, SBS ‘야인시대’ 영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최근에 출연한 KBS ‘전우’와 오는 10월 개봉을 앞둔 영화 <마이너리그>(가제)까지. 매니저 없이 홀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얻은 결과물들이다. 지금도 로드 매니저 하나 없이 혼자서 스케줄을 소화한다. 진즉에 ‘국민배우’ 강민호의 아들이라는 명함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현장에 가서 오디션을 보면서 심신이 고단할 때가 참 많았어요. 정말 좌절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상상하기도 했죠. ‘스타 2세’ 특권을 누리고 싶은 욕심이 들 때가 많았지만 전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활동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도 늘 ‘기초부터 제대로 된 배우가 되라’ 말씀하셨고, 저도 깊은 맛을 내는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정말 힘든 나날이었지만 이를 악 물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생계형 배우가 대부분 그렇듯 저소득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연기 트레이너, 의류 수입 등 입에 풀칠할 만한 직업을 찾아 전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온몸에 퍼진 치명적 독처럼 솟구쳐 오르고 있었던 연기에 대한 갈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찾고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한 가지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거였어요. 그 한 가지란 바로 ‘연기’였죠. 제가 과거에 했던 일들이 크게 잘 돼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을 지라도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을 것 같아요. 그만큼 연기를 향한 열망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14년 동안 연기 생활을 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아버지의 위대함이었다. 아버지처럼 대중과 호흡하는 직업을 갖고 보니,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환희 뒤편에 자리 잡은 고통에 대해 조금은 맛보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연기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어릴 적 기억에 아버지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셨을 때에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죠. 20~30년 동안을 한결같이 대사를 읽을 때마다 볼펜을 입에 물고 연습을 하셨죠. 그 장면이 너무 익숙해서 별 게 아닌 것처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대단한 노력파이자 섬세한 배우였던 것 같아요.”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아버지가 느꼈을 어려움을 마음으로 이해했을 때가 됐을 쯤, 그에게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대표작인 ‘전우’ 2010년 리메이크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전우’가 리메이크 되면 꼭 출연해보고 싶었을 만큼 소원이었다는 강성하. 2회부터 8회까지 풍산 유격대 소속으로 국군을 돕는 ‘천유’ 역으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아버지만큼 비중 있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맥을 같이 하는 작품을 통해서나마 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

“‘전우’는 아버지를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였죠. 이 작품을 하면서 아버지는 ‘국민배우’라는 애칭을 얻으셨고요. ‘전우’가 리메이크 된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전 흥분되고 떨려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요. 촬영 당시 아버지가 제 옆에 붙어 다니면서 지켜보는 것 같다는 황홀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정말 배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성하의 독특한 경험은 이뿐만이 아니다. 모친인 배우 배미자의 출연작인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도 등장했다.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 만난 강민호와 결혼한 뒤 연예계를 잠시 떠났던 배미자. 남편의 별세 후 생계를 위해 뛰어든 복귀작 KBS 드라마 ‘용의 눈물’. 이후 SBS ‘야인시대’를 거쳐 단막극, KBS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드라마와 CF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서 얼굴을 비추는 중이다.

“어머니는 ‘야인시대’에서 정진영의 어머니로 출연했고, 전 김두환의 막내 갈치로 나왔죠(웃음). 어머니가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하시는 편인데요. 당시에도 저에게 ‘더 열심히 하라’ 말만 남기셨을 뿐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지 않으셨죠. 연기 제대로 하는 모습으로 대중을 비롯해 어머니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진정한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14년 전 밑바닥부터 시작한 강성하. 어떤 캐릭터가 주어지든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자신이 있는 건 스스로가 일궈낸 값진 성과다.
이제 그는 대중의 희로애락을 책임지는 배우로 거듭나길 바랐다.

“스타의 화려한 면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에요. 대중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아픔을 연기로 표현하는 인간적 배우가 되고 싶어서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진솔한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될 테니 지켜봐주세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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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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