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영화人] 송승헌 “한류 거품? 우리 스스로 폄하하는 현실 안타까워”

[Ki-Z 영화人] 송승헌 “한류 거품? 우리 스스로 폄하하는 현실 안타까워”

기사승인 2010-09-11 13:39:01

"[쿠키 연예] “(미니홈피 유행할 때) 친구가 도토리 사달라고 하길래 ‘녀석 식성 참 특이하다’ 생각했어요. 트위터도 한 번 해보고 싶긴 한데 어려워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요. 노래도 요즘 유행하는 곡은 거의 모르고요.”

유행이란 유행은 속속 들이 알 것만 같은 도시적 외모다.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사뿐히 움직이는 긴 속눈썹에 우수에 찬 눈, 근육질로 다져진 몸매는 순정만화 속 캐릭터가 부럽지 않다. 배우 송승헌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곱상한 외모에 가려졌던 소탈함이었다. 멋 부릴 줄 모르는 그의 언행에 흠칫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15년 전 풋풋했던 잡지 모델에서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겨 4년이나 더 흘렀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인 30대에 송승헌은 캐릭터 변신에 도전했다. 영화 <숙명>과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격동적 삶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의 대표 작품인 드라마 ‘가을동화’나 ‘여름향기’에서 보여준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었다. ‘에덴의 동쪽’으로 2008년 MBC 연기대상을 거머쥔 그였지만 공동 수상자인 김명민(베토벤 바이러스)에 가려져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절치부심한 끝에 선택한 작품이 이번 <무적자>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무적자>는 24년 전 개봉된 홍콩영화 <영웅본색>의 한국판 리메이크 작이다. “제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라는 송승헌의 푸념 섞인 고백처럼 리메이크 작품은 발에 땀나도록 뛰고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고생해도 호평을 얻기 어렵다. 원작이라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기나 성공 면에서 안전함을 보장해준 멜로물이 연기하기 편했던 예전의 송승헌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쉽게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나기 싫었다. 자신의 연기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11년 전 송해성 감독과 함께 찍은 영화 <카라>의 참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송 감독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무적자>에 응했다. 그렇게 송-송 라인이 10여년 만에 다시 힘을 합하게 됐다.

“<무적자> 출연을 결심하기 전 준비하고 있었던 작품이 있었어요. 두 작품을 놓고 고심을 하긴 했지만 10여년 전 쓴잔을 함께 마셨던 송 감독이 ‘우린 예전의 송(성씨를 의미)이 아니야. 제대로 만들어보자’ 말에 귀가 솔깃했죠. 출연한다고 얘기하고 나서 대본을 받아 보니 ‘원작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생각이 바뀌었어요. 원작에서 보여주지 못한 인물들과의 관계, 캐릭터, 액션, 드라마 등 다양한 것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원작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우리끼리 마음껏 열심히 찍었어요. 찍고 나니 통쾌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정말 신나게 촬영했습니다.”



그렇다고 원작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원작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관객에게는 명장면을 곱씹어보는 재미를 준다. <영웅본색>을 보지 못하고 자라난 젊은 세대에게는 네 남자의 엇갈린 운명을 지켜보는 색다름을 선사할 예정이다. 극중에서 송승헌은 형제인 ‘혁’(주진모), ‘철’(김강우)과 함께 진한 우정을 키워가는 ‘영춘’ 역을 맡았다. 무기밀매조직의 행동대장이면서 ‘혁’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의리파다. 투박한 캐릭터를 온몸으로 표현해야 했기에 준비할 것도 체화시켜야 할 것도 많았다.

“역할이 화려하다 보니까 별 걸 다 했어요. 총을 결합하거나 분해할 줄도 알아야 했고, 보트 운전하기, 피아노 치기 등 감독님이 시키는 건 죄다 했죠. 그런데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3년이 흐른 뒤 피폐해진 ‘영춘’을 연기했을 때였어요. 감독님이 ‘네 눈빛 네 외모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은 도저히 찍을 수 없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20일 동안 눈빛을 탁하게 만들고, 5년 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고 못 마시는 술을 연신 들이켰죠. 그렇게 집중하고 나니 내면으로나 외적으로도 ‘영춘’의 상심한 캐릭터를 어느 정도 표현하게 됐고, 완성된 영상을 보니 감독님이 의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이렇듯 남자다운 캐릭터를 과시하는 게 생각했던 것 만큼 쉬웠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시 돌아와 달라’는 팬들의 아우성도 강했다.

“국내외 팬들은 지금도 ‘송승헌’ 하면 ‘가을동화’처럼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생각하시더라고요. <무적자>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고 알렸을 때에도 굉장히 반대가 심했죠. 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 <무적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언제까지 온화한 이미지로 남아있기 싫었거든요.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은 고정된 캐릭터를 바꾸고 싶었어요. 배우들과 손발을 맞춰나가면서 저도 ‘영춘’의 이미지에 녹아들 수 있었고요.”

송승헌은 주진모, 김강우, 조한선과 함께 연기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실 걱정이 앞섰다. 셋 다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배우인데다 개성이 강해 하나로 조합될 수 있을지 의문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을 거듭할수록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느꼈다. 영화를 찍을 때 배우들이 종종 입에 올리는 ‘환상의 조합’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정도란다.

“첫 인상과 달리 세 배우 모두 인간적이고 털털하더라고요. 우선 (주)진모 형은 과묵하고 카리스마가 강한 반면에 순박하더라고요(웃음). (조)한선이는 개구쟁이에 낙천적이고 (김)강우는 조용하지만 속이 깊고요. 소주에 고기 구워먹으면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밤을 샌 적도 많았는데요. 이렇게 똘똘 뭉쳐서 찍은 작품은 처음이에요. ‘아 이런 게 영화를 만드는 재미구나’하는 걸 느꼈습니다.”



잘생긴 네 배우의 조합이라, 경쟁은 불가피했다. 더 멋지게 실감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배우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송승헌도 극중 캐릭터가 경쟁 관계로 얽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내가 저 친구보다 잘 나와야 하는데’ 이런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캐릭터를 튀지 않게 극 흐름에 녹아내기 위해서 서로 조심하고 신중하다 보니 날카로운 시선은 점점 사라져갔죠. 감독님이 저희들에게 바랐던 것도 네 명의 조화였어요. 그런 내용을 고려하면서 촬영했고 다들 자기 캐릭터에 집중하느라 화면에 어떻게 나오는지 신경 쓸 새가 없더라고요(웃음).”

<무적자>를 끝내자마자 오는 11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영화 <고스트>를 촬영하고 있다. 이날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스트> 개봉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본에 드나드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일본 팬만 챙긴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송승헌은 <고스트> 캐릭터를 변경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고스트> 원래 시나리오는 일본 남자와 일본 여자의 멜로였어요. 출연을 결정하기 전 한국 사람을 바꿔줄 수 없냐고 제안했고 영화사 측에서 수락하게 돼 촬영에 들어갔죠. 일본에서 찍으면서 느낀 것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한류 붐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일본 스태프들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할리우드를 쫓아가고 있을 정도로 발전했는데 우리는 제자리인 것 같다’ 한탄을 하더라고요. 일본의 주 시청 층도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제가 느끼기에도 한류 붐이 왔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스스로 ‘한류는 거품이야. 한류는 이제 끝이야’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한류스타로서 국위선양에 앞장서고 싶다는 송승헌. <고스트>가 자신의 이름과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무적자>에서는 흥행 맛을 보고 싶다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감독님께서 ‘100만 넘으면 좋겠다’ 말씀하시던데 전 이왕 보실거면 조금 더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 늘 흥행에 목말라 있습니다(웃음). 흥행이 되면 정말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송승헌 이제 배우 냄새 좀 난다’ 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했는데 정말 들을 수 있을까요?(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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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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