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人터뷰] ‘26년’ 진구 “관객들, 나를 보는 눈 변했다”

[쿠키 人터뷰] ‘26년’ 진구 “관객들, 나를 보는 눈 변했다”

기사승인 2012-12-12 13:42:00


[인터뷰] 배우 진구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었다. 물론 그동안 ‘마더’, ‘혈투’, ‘모비딕’ 등의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지만 영화 ‘26년’에서 그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작품 속에서 파닥파닥 살아 숨 쉰다.

‘26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26년 뒤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모여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강풀 원작을 바탕으로 지난 2008년 첫 제작에 들어갔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작이 무산됐고, 제작사 청어람은 우리 고유의 ‘두레’에서 착안해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아 영화를 만드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해 눈길을 모았다.

영화가 4년여 동안 수차례 기획됐다 엎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초기 멤버로 캐스팅됐던 진구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배수빈이 연기한 김주안 역할이었지만 여러 변화가 생기며 지금의 곽진배를 맡게 됐다.

곽진배는 팀의 행동대장으로 다혈질에 거칠지만 정의로운 캐릭터로 마음속 깊은 곳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진구는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에 깊은 내면 연기로 껄렁껄렁한 곽진배를 소화해냈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영화 ‘26년’ 홍보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진구를 만났다. 그는 이 영화를 촬영했다는 것조차 긴가민가하다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26년’은 4년 전 제게 큰 실망을 줬던 작품이에요. 때문에 촬영을 했다는 것조차 신기하고 영화가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건 믿어지지 않아요. 꼭 몰래카메라에 속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이 작품에 어떤 매력을 느꼈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왔냐고 물었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이 기다린 것이 아닌, 작품이 자신을 기다려 준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4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배고파하며 기다렸다면 ‘기다린 게 맞다’고 하겠지만, 그 사이 영화와 뮤지컬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어요. 어쩌다보니 작품을 쉬는 기간에 ‘26년’이 다시 손을 내밀어 함께 하게 된 것이죠.”

그러더니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라며 눈빛을 반짝였다. 일부에서 정치성 짙은 영화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5.18 광주 항쟁’의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그들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고.

“먼저 영화의 시나리오를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러고 난 후 감독님이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를 줬는데 그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죠. 상처받은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던 저 자신에 대한 분노가 일었어요. 이 영화를 성심성의껏 찍어 저처럼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내 일 아냐’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의미를 주고 싶었어요.”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12일 200만 돌파가 확실시된다. 주연작 중 이렇다할 흥행작을 갖지 못한 진구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배우’ 인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담긴 작품이라고.

“이 작품을 통해 제가 거칠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요. 저는 해맑게 웃을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사람인데 그간 그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그런 기회를 얻었고 잘 표현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만족합니다. 더는 사람들이 저를 ‘거친 놈. 나쁜 놈. 무서운 놈’으로만 보지 않을 것 같네요(웃음).”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보는 관객의 눈빛이 달라진 것이 배우로서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만족감을 안겼다.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시사회 무대 인사를 갔는데 관객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어요. 기존 작품에서는 ‘멋있어요’ ‘잘생겼다’ 같은 소소한 칭찬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들리더라고요. 또 배우들을 보고는 영화 속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 많았어요. ‘그만 우세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저희 배우들도 울컥울컥 해서 몇 번이나 마이크를 서로에게 넘겼어요. 따뜻한 눈빛으로 저희 모두를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 정말 다시는 못 느낄 그런 기분이었어요.”

배우로 살면서 두 가지 꿈꾸던 소원(?)이 있었다. 하나는 촬영 중 생일을 맞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촬영 중 쓰러져 보는 것이었다. 다소 엉뚱한 바람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두 가지를 모두 다 해봤다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7월 20일이 생일인데 이 작품이 19일에 첫 촬영을 시작했어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깜짝 생일 파티를 선물 받았는데 정말 감동이더라고요. 제 생일이 7월이다 보니 학교 다닐 때는 늘 방학이었고 배우가 된 후에는 장마철이라 촬영이 잘 없었거든요(웃음). 또 해보고 싶었던 것이 촬영 중 쓰러져 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워낙 강철 체력이라 아무리 힘들어도 끄떡없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작품에서는 너무 더워서 호흡을 잘 못하다가 결국 호흡곤란이 와서 쓰러졌어요. 그러고는 알았죠. 촬영 중 쓰러지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생일은 매번 축하받고 싶지만 쓰러지는 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네요.”

이번 작품을 통해 희망하던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그는 다음 목표는 ‘착한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했다.

“착한사람 진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연기도 길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멀리 봤을 때 영리하고 연기 잘하는 사람보다 착한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거든요. 그래야 연기파, 한류스타 등도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착한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곧 연기파 진구로 이어질 것 같아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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