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26년’은 제작 과정부터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강풀 원작을 바탕으로 지난 2008년 첫 제작에 들어갔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작이 무산됐고, 제작사 청어람은 우리 고유의 ‘두레’에서 착안해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아 영화를 만드는 제작두레 방식을 도입해 눈길을 모았다.
대기업의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한국영화 산업구조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돌파구이자 두레를 통해 모두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1만 5000여 명의 국민이 이 영화에 힘을 보탰고 드디어 '26년'은 영화로 탄생했다.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국가대표 사격선수, 조직폭력배,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바로 그날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펼치는 프로젝트를 그린다.
한혜진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어머니를 잃고 그로 인해 후유증을 앓던 아버지마저 잃게 되는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으로 분해 강단 있는 저격수의 모습을 보인다.
각종 외압설에 휩싸였던 영화인만큼 주연 배우로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 한혜진의 마음을 흔든 영화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한혜진은 그 답을 시나리오에서 찾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꼭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고 영화적으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것 같은 확신이 있었다고. 그러면서 ‘배우가 영화를 찍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일까요’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걱정이 컸어요. 그러나 ‘허투로 뭘 할 애가 아니다’라며 절 믿어줬어요. 또 제가 신앙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이 나에게 뭘 얼마나 나쁘게 하겠는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문제가 된다면 그러한 것 또한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에 겁나지 않았어요.”
오는 19일 대선을 앞두고 ‘26년’을 비롯해 ‘남영동 1985’ 등 다양한 정치성을 띈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이 영화가 그런 것에 이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작품이 정치적인 것에 이용된다거나 연루되는 건 정말 슬퍼요. 그분들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 속 ‘그 사람’ 보다 더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정치적인 것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역사의 귀퉁이를 보여줌으로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자는 의미의 영화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면 그분들에게 두 번의 아픔을 안길 거예요.”
‘좋은 의미’가 담긴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그는 흥행 성적까지 좋아 기쁨이 두 배라고.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12일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친한 목사님이 영화를 보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당시 5.18 현장에 계셨던 분이라 이 영화가 남다르게 다가오셨대요. 그러면서 ‘이 영화를 만들어준 모든 분에게 존경의 의미를 표 한다’면서 ‘수고했어. 잘했어. 고마워’라고 해주시는데 정말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전 5.18을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한 것이 전부인데도 이렇게 분하고 가슴 아팠는데 실제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감히 그분들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어요.”
이번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저격수 미진으로 분한 그는 다음 작품 역시 선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아직은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때문에 캐릭터의 힘을 빌려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어깨에 힘을 잔뜩 준 강한 역 말고 힘을 뺐는데, 그래서 더욱 강렬한 캐릭터요. 예를 들자면 ‘친절한 금자씨’나 ‘블랙스완’ 같은 작품이요. 배우 한혜진의 변신 기대해 주세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