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영화 ‘26년’에서 곽진배 역을 맡아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 진구. 그동안 ‘마더’, ‘혈투’, ‘모비딕’ 등의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지만 영화 ‘26년’에서 그는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작품 속에서 파닥파닥 살아 숨 쉰다.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26년 뒤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모여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연기한 곽진배는 겉보기에는 다혈질에 거친 깡패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액션은 물론 깊은 내면 연기를 요하는 캐릭터. 힘든 촬영장이었지만 그의 곁에는 늘 수호파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수호파는 광주 건달 곽진배가 소속돼 있는 깡패집단. 진구는 “곽진배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서울 한 음식점에서 진구와 수호파 멤버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수호파 멤버들을 소개해주기 위해 진구가 직접 마련한 자리였다. 두목 안수호(안석환)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는 수호파는 한눈에 보기에도 선후배 사이를 뛰어넘는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술을 좋아하는 진구는 이들과 ‘술’ 덕분에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고. 촬영이 이어지는 내내 매일 밤 술자리를 가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더웠던 한여름 더위도, 힘들고 고단했던 촬영 스트레스도 모두 사라졌다.
수호파의 김정국은 “첫날 주연배우인 진구가 단역인 자신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했다. 아직도 진구와 자신이 친한 사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진구는 선배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후배지만, 아끼는 후배에게는 혹독한 선배다. 멤버 서동구는 진구의 추천으로 ‘26년’에 출연하게 됐다.
진구는 “인맥을 동원에서 넣어주고 그런 거 절대 하지 말자는 게 제 원칙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PD님이 영화에 출연할 경호팀에 추천할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저는 동구를 추천했습니다. 동구도 배운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고사 지내는 날 오디션을 보러 왔고 경호원이 아닌 수호파에 캐스팅 돼 함께하게 됐습니다”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어 “정말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그 친구에게는 정말 혹독하게 가르쳤어요.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 켜진 방에서 촬영이 없는 배우, 스태프들이 잠을 자는데 동구도 거기서 자고 있더라고요. 그날 제게 엄청 혼났어요. 배우러 왔으면서 피곤하다고 자면 더 발전할 수 없잖아요. 그 후부터는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쳤어요. 광주에서 촬영했기에 보통 촬영 있는 날만 내려오는데 이 친구들은 아예 이곳에서 살았어요. 이것이 저희의 의리였죠. 기특하게도 정말 피곤한 날도 현장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나도 든든하고 큰 힘이 됐어요. 그랬기에 곽진배 캐릭터가 잘살아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며 방긋 웃어 보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서동구는 “형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면서 “스타라고 해서 폼 잡지 않고 진심으로 후배를 챙겨주는, 정말 가족 같은 형”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진구는 이들보다 자신이 더 빨리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럭키가이’라 칭하며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수호파 친구들은 제가 거만해지지 않게, 늘 초심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줘요.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씩 흥행이나 배역에 대한 욕심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수호파 사람들을 만나면 ‘감사해야지’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자극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들의 땀과 노력이 가득한 영화 ‘26년’은 300만 관객을 목전에 두며 인기몰이 중이다.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