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특유의 선한 눈망울과 우직한 성실함으로 배우의 입지를 단단히 굳힌 고수. 그간 강렬한 캐릭터를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그는 영화 ‘반창꼬’에서 어깨에 힘을 뺀 생활형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백야행’에서는 푸른 빛 감도는 우수에 찬 연기를 선보이며 강렬한 여운을, ‘초능력자’에서는 인간미 넘치는 친근한 모습을 선보이다가 내면 깊은 곳의 초능력을 끌어내면서 끈질기게 맞서게 되는 인물을 연기했다.
지난해 개봉한 ‘고지전’에서는 매정한 역할을 소화해내 눈길을 모았다. 영화 초반에는 겁 많은 순수한 대학생으로 등장하지만 전쟁을 치르며 180도 달라진 악어중대 중위로 변해 상반된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지난 19일에 개봉한 영화 ‘반창꼬’에서는 까칠하고 무심한 소방관 강일로 분해 한효주와 러브라인을 펼친다.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마음을 굳게 닫았다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캐릭터. 영화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인 소방관과 의사의 사랑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그린다.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고수를 만났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날 그는 창밖을 보며 “비가 오니 하늘이 예쁘다. 구름이 나무에 걸려있다”며 한껏 감성에 젖어 있었다. 한 질문에도 한참을 생각한 뒤 신중히 답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엉뚱하고 재치 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줬다.
강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 ‘반창꼬’를 만났고 스토리가 주는 감동과 여운에 주저 없이 이 작품을 택했다고.
“‘고지전’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만큼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추억이 많긴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조금 편한 연기를 하고 싶더라고요. ‘반창꼬’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났을 때 따뜻하고 훈훈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작품이다 싶었죠.”
시나리오가 좋아 작품을 택했지만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자가 다시 마음을 열 수 있을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죽은 아내의 무게가 있는데, 새로운 사랑이 온다고 해서 마음을 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설정 상 천천히 마음을 열지만 연기하면서도 계속 갈등하고 고민했어요. 편집되긴 했지만 촬영할 때 그런 점에 중점을 둬 강일의 마음을 표현하는 몇몇 장면을 찍기도 했어요.”
지난 2월 결혼,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그에게 강일 캐릭터는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실제 고수와 강일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솔직히 모르겠어요. 그런 걸 떠나서 처해진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캐릭터를 봤을 때는 분명히 저와 비슷한 점이 있어요. 강일처럼 욕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욱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투덜거리지만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다 들어주는 면, 그런 부분이 비슷해요.”
극중 고수는 한효주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다. 한효주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고백은 물론이고 다리 위에 올라가 협박을 하기도. 유부남에게 어울리는 질문은 아니지만 극중 한효주 같은 성격의 이성은 어떨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통통 튀는 매력은 좋지만 선을 넘어가면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싫어할 거예요. 미수는 아마도 영화니까 사랑에 성공하지 않았을까요(웃음). 그리고 대부분의 남성 관객들이 미수의 통통 튀는 매력보다는 상처 많은 남자를 품어주는 포용력에서 더 큰 매력을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상대 배우 한효주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같은 소속사 후배지만 작품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까칠하고 욕도 잘하는 캐릭터를 매력 있게 잘 살려냈어요. 여기에 효주만의 매력이 더해져 함께 연기한 배우로 정말 만족합니다. 현장 분위기도 정말 좋았고, 다음번에 효주와 다른 작품에서 만난다면 이번에는 제가 적극적인 반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재밌겠죠?(웃음).”
영화는 개봉 첫 주 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8일 오전 집계된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반창꼬’는 122만 관객을 동원했다. 전작 ‘고지전’이 흥행에서 쓴맛을 봤기에 이번 작품의 성적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흥행은 예측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상황이나 여러 가지들이 운 좋게 잘 맞아 떨어져야 하고요. 그래서 그런 욕심보다는 작품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서도 ‘나 정말 잘했어’라고 칭찬해줄 수 있는 작품을 했다면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