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사육사 물어버린 이놈 호랑이, 죽일까요 살릴까요

[친절한 쿡기자] 사육사 물어버린 이놈 호랑이, 죽일까요 살릴까요

기사승인 2013-11-27 19:26:00


[친절한 쿡기자] 호랑이여! 밤의 숲 속에서/빛나게 불타고 있는 호랑이여!/어떤 불멸의 손 또는 눈이/그대의 무시무시한 균형을 만들 수 있었는가?/어떤 먼 심연 또는 하늘에서/그대 눈의 불은 탔는가?(윌리엄 블레이크, ‘호랑이’, 부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인 블레이크는 시집 ‘경험의 노래’에 실린 이 시를 통해 호랑이의 파괴적이며 본능적 충동을 억압된 현실을 타파하는 건강한 에너지로 묘사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호랑이는 용맹과 위엄의 상징입니다. 사자, 재규어, 표범 등과 함께 고양이과 표범속(屬)에 속하는 호랑이는 어떤 서식지에서든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죠.

그렇지만 낮은 사냥 성공률과 제한된 번식 능력 때문에 서식지에서 환경이 나빠질 때 가장 먼저 대가 끊깁니다.

야생 호랑이는 현재 지구상에서 3000∼4000마리만 생존합니다. 유전적으로는 9종(아종)으로 분류되지만, 그 가운데 4종은 멸종한 상태이며 5종이 멸종위기로 분류돼 있답니다. 아종이란 같은 종이지만 분포 지역을 달리하는 경우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중 몸집이 가장 큰 아무르호랑이(통칭 시베리아 호랑이)는 현재 4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호랑이의 용맹과 본능적 충동은 범지구적 산업화라는 억압을 타파하기는커녕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죠.

아무르호랑이는 1900년 무렵만 해도 만주와 러시아, 한반도 등지에 널리 분포했습니다. 만주에 살면 만주호랑이, 러시아에 살면 아무르강의 이름을 따서 아무르호랑이, 우수리에 살면 우수리호랑이, 한반도에 살면 한국호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동북호랑이라고 고집하죠. 이 아종의 통칭이 유래한 시베리아에는 원래 호랑이가 없었고, 아무르에서도 호랑이는 사라졌습니다.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는 중국과 러시아보다 훨씬 더 많은 호랑이가 고밀도로 분포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으로 헤아릴 틈도 없이 사라져갔죠.

과천 서울대공원의 시베리아 호랑이 ‘로스토프’가 사육사의 목덜미를 물어 중태에 빠트리자 이 호랑이를 죽일 것인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호랑이로서는 본능에 충실했던 것일 텐데 죽이는 것은 가혹하다는 동정론과 야생성이 되살아난 만큼 동물원에서 관리하기 어려워 사살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붙고 있답니다.

멸종위기종인 시베리아 호랑이를 한 마리라도 더 보존해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우리의 민족적 자산이기도 한 시베리아 호랑이가 이름은 어떻든 자손만대 살아남아 백두대간과 장백산맥을 넘나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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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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