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하지원 “하정우 때문에 선택한 허삼관… 힐링이었어요”

[쿠키人터뷰] 하지원 “하정우 때문에 선택한 허삼관… 힐링이었어요”

기사승인 2015-01-17 20:09:55
사진=박효상 기자

팔색조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잘 어울리는 여배우가 있을까. 매년 한 작품 이상씩을 내놓으며 꾸준하게 활동한 하지원(본명 전해림·37)이지만 그를 보고 ‘질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황후부터 검객, 탁구선수, 복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냈다.

그런 하지원이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역할이 있었다. 여배우라면 그 시기를 한번쯤 고민해 볼법한 어머니 역이다. 이번 영화 ‘허삼관’ 출연 결정을 그래서 망설였다. 아들 셋을 둔 어머니 옥란 역이 아직 자신과 맞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지원은 그간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엄마 역할을 언제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저는 사실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옥란이라는 캐릭터가 사실 자신 없었어요. 두렵기도 했고요. 보통 시나리오를 보면 ‘재밌겠다’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하는데 옥란이는 전혀 내 옷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하지원의 마음을 돌린 건 감독 하정우(본명 김성훈·37)였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2009)가 흥행에 실패한 뒤 야심차게 차기작 ‘허삼관’을 준비하던 하정우는 여주인공 1순위로 하지원을 꼽았다. 하지만 러브콜을 받은 하지원은 거절을 하기 위해 그와 약속을 잡았다.

“사실 예쁘게 거절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간 거였어요. 크리스마스이브에 ‘기황후’(2013) 촬영이 없어서 그날 하정우씨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죠. 전날 밤샘 촬영을 하고 시나리오를 아침에 읽었어요. 근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해학적인 부분을 굉장히 세련되게 표현한 게 매력 있었고, 소설에 있는 어투를 살린 것도 재밌었어요. 시나리오가 워낙 재밌다보니까 100% 거절이라기보다 50대50이라는 마음으로 나갔어요.”

옥란 캐릭터를 맡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단지 하지원은 궁금했다. 탄탄한 원작 ‘허삼관 매혈기’를 바탕으로 이렇게 재밌게 나온 시나리오를 하정우가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낼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하정우가 한 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본인도 아버지 역할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원은 ‘(엄마 연기가) 나만 처음이 아니구나’라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허삼관’에서 배우로서도 등장하는 하정우는 가진 건 없지만 당당한 남자 허삼관 역을 연기했다. 마을에서 유명한 절세미인 옥란(하지원)에게 첫 눈에 반해 적극적인 애정공세로 결혼에 골인한다. 이후 아이 셋을 낳아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은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한 채 살아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와 갈등이 속출하지만.

하정우 감독은 하지원에게 이런 상황적 배경 설명과 함께 “하지원이 표현한 옥란을 연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전형적인 어머니 이미지로 그려지진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거기서 편안함을 찾은 하지원은 결국 출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영화였는데 하지원에겐 잊지 못할 작품이 됐다. MBC ‘기황후’(2013)을 마치고 불과 2주 만에 들어간 작품이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을 법도 했지만 오히려 그에겐 심적 안정을 줬다고 했다. 펜션에서 합숙하며 촬영했던 게 특별했다. 하지원은 촬영장이 마치 “힐링캠프 같았다”고 표현했다.


“합숙 촬영은 되게 드문 경우긴 한데 제가 원래 캠핑·펜션 이런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제가 또 자연을 되게 좋아해요. (숙소가) 한옥으로 된 펜션이었는데, 마루에서 달도 보이고 앞엔 상추 텃밭이 있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산책도 하고, 비 오면 그냥 맞기도 하고. 기황후 때 너무 힘들었던 걸 허삼관에서 힐링 시켜준 것 같아요.”

촬영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촬영을 진두지휘한 하정우 감독의 역할이 컸다. “하정우씨가 감독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하지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점이 가장 좋았냐고 하자 하지원은 “웃겨주는 거?”라고 말하면서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지원은 “촬영하면서 정말 계속 웃었다”면서 “현장에서 배우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최상의 연기할 수 있는데 (하정우 감독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니까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이기 때문에 그 섬세함을 미리 아시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이 감독으로서 너무 좋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촬영이 끝난 뒤 하지원은 ‘(엄마 역할을) 예쁜 영화에서 (처음) 할 수 있으니까 난 정말 행운아다’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작품 하기 전에는 왠지 내 옷이 아닌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는데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해주시니까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는데 하지원은 해냈다. 앞으로는 더 거침없는 시도들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묻자 흥미를 끄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사실 악역은 피했었거든요. 제 몸이 힘들 것 같았어요. 나쁜 생각해야하고 그러니까(웃음). 그래서 피했었는데 이제는 매혹적인 악역도 해보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다양한 성격이 있는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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