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이슈 리마인드] 두 달째 ‘폐품 방화복’ 처우개선 뒷전… “큰불을 만나면 솔직히 두렵습니다”

[김민석의 이슈 리마인드] 두 달째 ‘폐품 방화복’ 처우개선 뒷전… “큰불을 만나면 솔직히 두렵습니다”

기사승인 2015-04-07 12:02:55

[쿠키뉴스=김민석 기자] 지난 주말 새까맣게 그을린 방화복을 입고 건물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한 소방관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뜨거운 화제였습니다. 주인공은 부산진 소방서 홍치성 소방장으로 지난 3일 부산 중고차 매매단지 화재현장에 투입돼 사투를 벌인 후 허기를 달래다가 그 모습이 찍힌 겁니다.

홍 소방장은 6일 SBS ‘한수진의 SBS전망대’와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잇따라 출연해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각종 현장에서 소방관들을 만나게 되면 따뜻한 말을 건네 달라”고 입을 연 그는 “시원한 생수 한 잔 주시면 정말 보람을 느끼고 힘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화재 진압 작전 당시의 심정을 묻자 홍 소방장은 “어느 현장을 가든지 항상 긴장한다”라며 “큰불을 만나면 솔직히 많이 두렵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늘 하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솔직히 많이 두렵습니다”

화재사건이 터질 때마다 화마의 공포와 마주해야하는 소방관들, 그들 역시 불을 무서워하는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홍 소방장은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사진 속)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집사람은 사진이 작업 후에 좀 초췌한 모습으로 나와 마음이 아팠던지 썩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고 전했습니다. 어린 둘째 딸은 이런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지 ‘아빠, 라면 맛있었어?’하고 물었다고 하네요.

홍 소방장은 최근 쟁점이 됐던 ‘현직 소방관들의 현장의 처우와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습니다.

부산 지방직 소방관인 홍 소방장은 “(전국의 소방관들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예산 확보 등이 좀 더 용이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기능이나 성능이 뛰어난 장비 확보가 가능해지고, 그러면 소방관들의 현장 활동 능력도 많이 향상될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 보호와도 바로 연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국가직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홍 소방장은 “개인적으로 제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인력 보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가직 전환 반드시 필요해”

홍 소방장은 장비 지급 문제에 대해 “지방 사정에 따라 편차가 좀 있는 것 같다”면서 “다행히 부산같은 경우는 장비가 원활하게 잘 나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합니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해 5월 일선 소방공관들이 소방장갑 등 방호 물품을 자비로 구입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소방관들은 “활동화가 다 떨어져서 신발을 지급해 달라 요청하니 예산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라거나 “화재진압 장갑을 6개월 쓰면 너덜너덜해지는데 현재 3년째 쓰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한 소방관의 아내가 “남편이 소방관인데 장갑이 없어 사주려 한다”며 “아마존에서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문의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2월에는 소방관들에게 안전성 성능 검사를 받지 않은 ‘가짜 방호복’이 보급됐다는 소식이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후 방화복 1만9318벌을 회수한 뒤 대체 방화복을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거해간 방화복 두 달째 깜깜 무소식

신형 방화복이 지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방화복 구매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가 50대 50으로 구성되는데 국비가 아직 내려오지 않아 방화복을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비 지원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가 방화복 구매 예산을 ‘수시배정 대상 사업’으로 분류됐기 때문입니다.

수시배정 대상사업은 분기별 자금 배정에서 제외되며 예산이 필요할 경우 주무부처가 세부 추진계획 및 상황 관련 자료를 첨부해 예산 배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주무부처인 국민안전처는 특수방화복 구매 예산을 요청했으나 아직 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정부가 늑장 대응을 하는 사이 일선 소방관들은 비번근무자의 구형 방화복을 빌려 입거나 서류상 폐기된 낡은 옛 방화복을 입고 화제 현장에 출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가짜 방화복 논란이 불었던 당시 익명의 한 소방관은 라디오에 나와 “구형 방화복은 220도 정도를 견디는데 화재 현장은 최고 300도까지 올라가 소방관이 화상을 입기도 한다”며 “하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신형 방화복을 받지 못한 소방대원들은 아직도 구형을 쓰고 있다. 이번 가짜 방화복 논란도 신형 방화복이 보급되는 와중에 터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수방화복은 소방관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같은 장비입니다. 400도 이상의 열에도 견뎌야 하는 등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소방관의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합격 날인이 찍혀 일선 소방서로 납품되는데 조사 결과 소방서에 납품된 방화복 수와 기술원 측이 합격을 인증한 방화복 수량이 다르게 나와 논란이 일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 소방관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호소글을 올렸습니다.

12년 차 소방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지난 4일 “방화복 없이 생활한 지 두 달이 넘었다”며 “하루 이틀, 1주일 정도는 빌려 입거나 폐품 방화복을 입을 수도 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지급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는 또 “기존에 지급된 방화복이 문제가 있다면 수거가 먼저가 아니라 문제없는 제품을 먼저 공급한 후 수거해 가는 것이 마땅한 행정”이라며 “선지급후 수거 혹은 맞교환이 맞다. 군대로 비유하면 군인에게 총 없이 전쟁하라는 소리다. 현장 소방관들은 다 나가 죽으라는 건가? 대체 세금 걷어서 어디다 쓰는 것이냐”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국민안전처는 “전체 보유 방화복이 4만여벌로 1일 9000여명의 현장출동대원들이 착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정부는 모든 소방관들의 체격과 체형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또 현장요원에겐 두 벌이 지급되는 것이 원칙인 걸 모르는 걸까요.

일선 소방관들이 겪는 어려움은 또 있습니다. 6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인명을 구하기 위해 분초를 다투며 출동하다 접촉사고가 나도 모든 사고의 책임과 비용은 운전 소방관 개인이 지고 있었습니다.

최근 5년간 소방차 교통사고 1000여건 대부분의 사고 책임은 소방차를 운전한 소방관에게 돌아갔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골든타임이다 뭐다 해도 어떻게 보면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것인데
중앙선 침범으로 사고가 나면 우리가 다 배상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처우 개선 약속은 말뿐

정부는 이러한 논란이 터져 나올 때마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말을 반복해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7일 소방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부족한 인력의 증원과 처우개선, 소방장비 예산 지원 등 소방관 여러분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부분을 집중적으로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건 없어 보입니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 (중략)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어느 미국 소방관이 썼다는 기도문입니다. 오늘도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불길 속으로 뛰어듭니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방화 장비를 들고 불과 맞서라는 것은 군인에게 가짜 총을 주고 전장에 나가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국가는 국민들이 신뢰하는 소방관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지, 또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참담할 뿐입니다.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ideaed@kmib.co.kr
김민석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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