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쉬고, 배우고…유일한 ‘인생 배움터’ 범박 공부방 기사회생

먹고, 쉬고, 배우고…유일한 ‘인생 배움터’ 범박 공부방 기사회생

기사승인 2015-06-19 12:30:55
교육부 홍보영상 캡처

[쿠키뉴스=이다겸 기자] “범박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예요.”

30년 간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을 돌봐온 경기 부천시 소사구 계수동의 ‘범박 공부방’이 문을 닫게 될 위기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회생에 성공했다.

앞서 부천시는 범박 공부방이 무허가 시설이며 사회복지사가 정년(65세)이 됐다는 이유로 지원을 끊겠다고 밝혔으며, 6월 말까지 폐업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범박 공부방 대표인 지부예씨는 18일 부천시가 익명의 후원자를 발굴해 이전과 같은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재개발 지역인 계수동의 이 공부방이 계속 운영돼야만 하는 의미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일까.

범박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A씨는 “이 공부방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입을 열었다.

“이 동네가 재개발 지역이라 굉장히 위험하다. 빈 집이 거의 80% 가까이 된다. 문도 깨져있는 곳이 많아서 아무나 들어가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동네에 성폭행범이 돌아다닌다는 팩스를 받기도 했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계유지로 바빠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런 아이들을 보호하는 곳이 바로 범박 공부방이다.”

아이들은 하교 후 아무도 없는 빈 집 대신 공부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범박 공부방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A씨에게 물었다.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놀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공부를 많이 시키는 편이다. 밤 9시 정도까지 하는 것 같다. 또 이곳에서 씻는 것을 해결한다. 아이들이 사는 집은 거의 다 공동화장실을 쓰기 때문에 제대로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래서 동네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마을회관에 위치한 공부방에서 씻는 일이 다반사다.”

공부방에는 명단에 올라있는 초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도 많이 온다고 한다. 그만큼 방치돼있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학업을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요즘 우리나라 교육열이 높은데 여기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니 아이들 교육에 돈을 투자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업에서 뒤처지게 되고, 결국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A씨에게 아이들의 현 상황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공부방에는 편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 친척집에 얹혀사는 아이, 입양됐지만 부모가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 등 사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사연까지 있는 아이들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만큼 부모에게 관심을 받기는 어려워보였다.

“공부방에 다니는 초등학생 아이는 엄마가 안 계셔서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아무래도 엄마가 없다보니 학교 공부에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해 같은 학년 친구들 보다 성적이 많이 떨어진다. 또 중학생이지만 아직 덧셈, 뺄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니 당연히 학교생활에도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이 아이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중·고등학교 중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성인이 된 아이들이 학벌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겠나. 그래서 공부방에서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현재 범박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B씨도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너무나도 소중한 장소”라고 강조했다.


“봉사활동은 주로 주말에 한다. 봉사 오시는 다른 분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밥을 챙겨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점심, 저녁을 챙겨주고 있다. 또 공부를 가르치고 노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과 추억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범박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공부하는 장소를 넘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장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부방이 폐쇄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B씨는 “공부방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며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하교 후 집에 혼자 있게 될까봐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그는 “그만큼 공부방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공간”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아이들이 이 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공부방이 운영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plkplk123@kukinews.com
이다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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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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