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사람이야기] “그리움 토해내듯 울던 날들…오늘도 먼저 간 남편이 그립습니다.”

[김단비 기자의 사람이야기] “그리움 토해내듯 울던 날들…오늘도 먼저 간 남편이 그립습니다.”

기사승인 2015-08-08 06:00:56

[쿠키뉴스=김단비 기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명자(69·여)씨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독립심 강하고 자존감 강했던 그녀는 남편의 죽음 앞에 하염없이 약해져 갔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매일 일기로 풀어내며 이별을 인정하고 그리움을 남은 생애 동안 동행해야 할 감정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 또한 삶의 일부이고 행복이란 사실을 깨닫기까지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그녀는 고독과 그리움을 마음의 병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힘으로 바꿨다.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5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명자씨는 “대장암을 앓던 남편을 떠나보내기 전까지 충분히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다. 남편이 완화의료를 받으며 고통에서 벗어날 때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했다. 독립심이 강했던 나는 남편이 곁을 떠나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직면할 때마다 엄습해오는 외로움과 사무치는 그리움, 고독함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다”고 회상했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같았던 그녀는 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사별의 아픔을 이기는 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녀는 “자식도 성장했고 주위에 친구도 많았지만 정신적 괴로움을 토로할 곳이 없었다. 나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위로가 오히려 내게는 상처가 됐다. 진정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고 말했다.

입원한 날 그녀는 일기를 썼다. 2009년 10월 9일 일기에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감당되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입원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불안감이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생애 처음 보는 낯선 내 모습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씨는 “당시 주치의는 내게 일기 쓸 것을 권했다. 일기에 내가 느꼈던 좌절감, 슬픔, 그리움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일기를 쓰는 동안 나는 성숙해 갔다. 사별의 감정을 극복하고 죽음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이르렀다. 극복이란 표현이 그리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움을 한평생 남편을 사랑했다는 나의 감정의 반증이자 여생 그 자체로 인식하면서 능동적 슬픔으로 바꿔 나갔다”며 변화된 삶을 소개했다.

이씨는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부부들에게 죽음을 정의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그녀는 “60대가 되어도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그 미래의 계획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좌절한다. 그러나 기대와 좌절이 반복되는 삶은 인생 자체에 집착하고 죽음을 터부시하게 된다. 그러면 아름다운 이별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훈련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는 자가 아름다운 이별을 고할 때 남은 자 역시 그리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전했다. “지금도 남편이 그립습니다. 그리움으로 가득 찬 내 마음 안에 남편이 살고 있다고 믿어요.”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kubee08@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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