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제 개선, 가족 고통은 덜어주었나

[기자수첩]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제 개선, 가족 고통은 덜어주었나

기사승인 2017-02-18 00:02:00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누구를 위한 정신보건법 개정입니까. 우리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조현병을 10년 이상 앓는 딸을 둔 노모의 목소리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정신질환자 가족은 병 자체로 인해 겪는 고통 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노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제는 나이가 들어 딸을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칠 뿐 아니라 암까지 발병했다. 가족은 하루 하루가 죽을 것 같은 심경이다”며 “그런데 의료계는 이권 다툼을 하고 있다. 환자 가족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정신보건법 개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정신질환을 10여년 이상 앓고 있는 자식을 두었다는 한 70대 남성 역시 “정신질환자라는 편견 속에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족들과 환자들은 의지할 곳도 없고 가계도 파탄이 났다”며 “정부가 정신질환자를 위한 대처법이 담긴 책자도 주지 않아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법만 개정할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박인숙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개정 정신보건법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의 문제를 둘러싼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부, 의료계, 법조계, 언론인 등이 패널로 참석해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눈여겨 볼 것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다. 이날 현장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은 법 개정과 관련해 ‘발언권’을 달라고 외쳤다.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절박함’이 느껴졌다. 한 환우는 “환자들의 인권이 강화돼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의사(의사들의 인권)’만 외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환자가 빠진 토론회는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오는 5월30일 시행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환자의 인권침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강제입원제도’ 절차 요건 강화한 것이다. 기존에는 강제 입원을 위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입원 필요성이 있는 경우’ 또는 ‘자신의 건강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자·타해 위험)’ 중 1가지만 충족하면 됐다. 반면 개정법에서는 2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입원이 가능하다. 환자의 강제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지며, 그간 가족의 동의, 의사 한명의 진단서만 있으면 입원이 가능한 요건이 대폭 바뀐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두고 환자와 그 가족 간에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제입원으로 20대 시절을 모두 병원에서 감금된 채 보냈다는 한 환우는 “환자 인권을 위해 강제 입원은 금지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반면 환우를 돌보는 가족들은 “강제입원 조항이 완화되면 가족들이 그 고통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입원 조항이 대폭 개선된 것은 환자 인권을 위해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퇴원 이후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결국 강제입원 요건이 강화되면서 ‘입원 부적합’ 판정을 받은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의지할 곳이 가족 밖에 없는 것이다. 가족들 역시 정신질환자 환자들을 온전히 돌봐야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 정신보건법이 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개정된 것은 사회적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고통이 사그러드는 것은 아니다. 입원부적합 판정을 받은 사람들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정부와 이 사회가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 가족들과 그 환자들을 품을 수 있는 경제적,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행되는 개정안은 반쪽 짜리 법에 불과할 것이다. 

newsroom@kukinews.com

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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