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비일비재하죠. 제가 속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도 한명이 얘기를 시작하면 친구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어요. 채팅방은 몇몇 여학생의 신상과 소문 등에 대한 얘기로 도배가 됩니다. 지나치다고 생각될 때가 많아요.”
모바일 ‘단톡방’(메신저 단체 채팅방)을 통해 성희롱은 수시로 벌어진다고 서울 A대학의 한 학생은 말한다. 대학가에서 성희롱 발언이 일상화 돼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한 배신감과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6일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 붙은 익명의 대자보는 모 학과 13학번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동기 여학생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2년 넘게 성희롱을 해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학생의 외모와 몸매를 품평하고 성(性)적인 별명을 만들어 부르는 등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진술이 충격을 줬다.
불과 일주일 뒤 같은 과 12학번에서도 2012년부터 각종 성추행 및 단톡방 성희롱을 겪었다는 피해 제보가 뒤따르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연세대에선 지난해 9월과 11월, 남학생 십여명이 단톡방을 이용해 성폭행 등을 암시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 총여학생회 등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연세대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와 고려대, 국민대, 경희대 등에 이어 올 들어서도 홍익대, 동국대 등에서 여학생들이 희롱과 비하의 대상이 됐다는 피해사례가 드러났다. 가해자들 중에는 학생회나 동아리 집행부도 포함돼 있었고, 성희롱 대화에 끼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상습적으로 이뤄진 가해 이유는 ‘농담 삼아’, ‘장난으로’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물기 힘든 불신의 장벽을 세웠다. 성희롱은 엄연한 범죄다. 범죄가 만연한 대학사회에서 대학의 역할과 책임은 더 커졌다. 보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사안을 다뤄야 할 때다. 자칫 과거지향적 대처로 성희롱 사례를 방치한다면 대학은 제2의 가해자나 다름없다.
대학에서 성 관련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 등도 잇따르는 요즘이다. 성희롱이 근절되지 않다보니 구체적 예방교육의 필요성에 힘이 실린다. 한 학부모는 성희롱 사건이나 오리엔테이션 사고 등으로 불안함을 호소했다. 학생의 인격과 안전 그리고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분명한 원칙과 대안이 없다면 그간 그 무엇보다 중요시 됐던 학교의 위신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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