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제조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크다. 기업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악의적인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뿐만 아니라 징벌적인 배상도 해야 한다. 이러한 징벌적인 배상의 규모는 매우 커서, 기업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자동차 회사가 신차를 개발한다고 하자. 신차개발 중에 연료통을 잘못 설계해서 뒤에서 추돌된다면 차에 불이 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영진은 신차의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과 설계변경 비용을 비교할 때 손해배상 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판단해, 신차를 그대로 출시했다. 출시 후 추돌사고로 인한 화재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다면 회사가 부담할 손해배상액은 경영진이 예상한 손해배상액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 법원은 피해자가 실제로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에 더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세금효과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에 대한 보전과 징벌적 성격을 갖는 배상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회사가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온전히 부담할 때만 그 회사가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금에 대한 세금효과를 함께 생각해보면 그 징벌의 효과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법인세는 수입에서 비용을 뺀 잔액에 세율을 곱해 계산한다. 미국에서는 사업활동 중에 정상적으로 지급된 손해배상금이 통상적이고 필요한 사업경비에 해당하면, 징벌적 손해배상금이라 하더라도 이는 세무상 비용(손금)에 해당한다.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금이 손금에 해당하면, 그 손해배상금에 세율을 곱한 금액만큼 법인세 부담을 줄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 징벌의 효과가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오바마 행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손금으로 보지 않도록 세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시도는 실패했다. 대부분의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화해계약에 의해 종결되고, 이 계약으로 받은 합의금 중 징벌적 성격을 갖는 부분을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결국 형사상 처벌인 벌과금과 달리, 민사상 제재인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사업에 통상적이고 필요한 비용으로 인정될 경우 손금으로 인정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금, 손금인정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어떻게 세무처리 할까? 우리나라의 경우 구체적인 규정이 도입되지는 않았다. 다만 손해배상금의 경우 회사가 업무와 관련해 타인에 피해를 주고 지급한 보상금은 사회통념 상 적정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금으로 인정한다. 그러면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손금으로 인정되야 할까?
징벌적 손해배상의 손금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손금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보면 된다. 즉 지출된 손해배상금이 사업과 관련해 발생한 비용으로 통상적인 것이거나, 수익과 직접 관련 있는 비용이면 손금으로 인정된다.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수익창출을 위한 활동 중에 발생한 불법행위로 인한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결국 사업과 관련된 통상적인 비용인지가 문제가 된다.
여기서 통상적인 비용이란 같은 종류의 사업을 영위하는 다른 법인도 동일한 상황이라면 지출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비용을 말한다. 그리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전한 사회질서에 심히 반하여 지출한 비용은 통상적인 비용에서 제외된다.
건전한 사회질서에 반하여 지출된 비용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그러한 지출을 허용하는 경우 야기되는 부작용, 그러한 지출이 거래에 미칠 영향, 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의 정도, 규제의 필요성과 향후 법령상 금지될 가능성, 상관행과 선량한 풍속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과세당국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한국회사는 미국에서 불법적인 담합행위를 해 미국 구매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미국 구매자집단으로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 당했다. 소송종결을 위해서 한국회사는 구매자집단과 화해계약을 체결하고 손해배상금(합의금)을 지급 했는데, 우리 과세당국은 이 합의금과 이와 관련된 법률비용을 손금으로 인정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민사상 제재인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건전한 사회질서에 심히 반한 비용이 아닌 것으로 인정되면 손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징벌적 손해배상금, 손금으로 인정 해야할까?
미국의 경우, 이 문제는 오래된 세무이슈였다. 이에 관한 논의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확대로 인해,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세무상 이슈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제도는 사회구성원의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금의 손금인정 여부는 우리사회의 사회질서 위반에 대한 인식을 반영해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김태훈 공인회계사·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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