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몇 년째 우리나라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지표가 하나 있다. 바로 자살률이다. 덕분에(?) OECD회원국의 건강 상태, 주요 의료 인력, 보건 의료의 질과 비용 등 OECD 보건지표(Health at a Glace) ‘자살률’ 세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은 2015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26.5명으로 OECD 국가 평균 12.1명보다 2배 이상 높다. 이 결과의 심각성에 대해 국민일보는 2013년 한국 자살자 수 1만4427명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한 달 평균 아파트 300세대(4인 가족) 전 주민 약 1200명이 숨지는 것과 같다고 보도한 바 있다.(2015. 5.11일자)
사실, 자살과 중독 장애 연관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알코올 중독의 경우,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 자살 시도율이 일반인 보다 적게는 4배, 많게는 10배 이상 높다는 연구가 있다. 외국도 알코올 중독자 자살 시도율이 일반인과 비교해 약 6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박의 경우도 중독자의 자살 충동감이 47%에 이른다는 영국의 조사가 올해 발표되었는가 하면 호주, 독일, 미국도 도박 중독자의 자살시도는 23%, 자살 충동감은 무려 8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중독 장애자들이 치료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약 4백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알코올중독 환자 중 치료받은 환자는 2010년 약 6.5%에 불과 했다. 도박중독의 경우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도박중독’으로 진료 받은 사람은 1113명이다. 이 숫자를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도박중독자 추정수 207만 명(유병률 5.4%)에 대입하면 막상 치료를 받은 대상은 0.05%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4년에는 도박중독 치료자가 불과 751명이었으니 그나마 개선되었다고 위안 삼아야 할까?
이렇게 치료를 받지 않는 이유는 중독 장애에 대한 예방 및 인식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병에 대한 인식이 낮고 여기에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독은 조기발견과 조기치료, 지속적 관리를 필요로 하는 질환으로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 인데 일시적인 취함 현상 또는 급성금단 시기만 지나면 끝나는 급성질환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병에 대한 관리를 하지 않아 재발이 잦다는 것이다.
또 뇌 질환이라는 인식이 낮아 건강검진을 통한 조기 선발검사가 안되어 만성화 되면서 합병증이 생기는 것이다. 조기치료와 지속적 관리가 되지 않아 치르는 대가는 환자 자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너무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2014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에 따른 연간 경제적 손실이 6조4800억원에 이른다. 중독문제만 보더라도 2015년 중독포럼은 4대 중독에 대한 사회적 손실이 무려 1백 9조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인식개선 사업을 포함한 예방 교육과 건강검진에 중독 장애에 대한 선별검사와 같은 정책을 통해 조기 발견과 조기치료 나아가 지역사회 관리(중독관리지원센터 50개소에 불과)와 이를 위한 적극적 예산, 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투자와 노력 없이 개선은 이루어 질 수 없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이 경제논리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태경 국립정신건강센터 중독정신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