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답 정해놓고 논의하자는 정부

[기자수첩] 답 정해놓고 논의하자는 정부

기사승인 2017-11-07 04:00:00
온라인 스타 수학강사인 삽자루 선생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의 구세주’로 불리는 존재다. 그리고 그는 국내 초등수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추론능력’을 꼽았다. 현재 우리 교육은 어려서부터 창의적인 추론 능력을 배양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그는 “청도 우시장에 사람과 소의 다리를 모두 세어보니 다리가 총 320개였다. 사람과 소의 합은 100이다. 그렇다면 우시장에 있는 사람의 수는 총 몇 명인가?”라는 물음에 초등학생이 중학교에서 배우는 연립방정식으로 풀었다면 똑똑한 아이일까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똑똑한 아이라고 답한 사람들에게 삽자루 선생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추론능력을 선행학습이라는 나쁜 공부법으로 제때 익히지 못하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삽자루 선생의 이야기는 수학을 풀이하지 않고 암기한 결과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제한한다는 이야기이자, 미래를 살아감에 있어서 공식을 암기해 적용하거나 답을 알고 대응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삶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의 지적과 질책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같은 국내 교육의 한계는 비단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문재인 케어’ 추진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모습에서도 폐단은 여실해 드러났다.

◇ 전문가들은 문재인 케어를 우려하는 이유?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계획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련의 정책수립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답을 정해놓고 논의를 하자는 정부의 태도에 불만이 커서다.

대표적인 예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와 치매국가책임제다. 의료기관에서의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전환한다는 것은 민간의료기관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수익 없이 급여진료만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해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 의료행위에 지급되는 급여가격을 의미하는 수가는 행위의 70~80% 수준에 불과하다. 즉, 급여진료만으로는 의료기관이 적자운영을 계속하다 파산하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관련 정책 수립과정에서 의료계와의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국가책임제 정책수립과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치매를 국가가 전부 책임지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세부 추진 내용이나 계획은 임상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혼란이 일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결국 정부가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또는 치매국가책임제라는 답을 정해놓고 그 과정을 논의하자는 식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직접 당사자인 의료계와는 별다른 교감이 없었으며 세부 계획을 수립하는 시일마저 12월까지로 못 박아 놓은 상황이다.

당연히도 충분한 논의와 창의적 제안을 도출할 추론과정이 확보되기는 요원하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2달의 시간을 정해놓고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는 형식적 대화자세일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대한노인의학회 또한 “치매국가책임제와 관련 사항에 대해 강의하는 의사도 100%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지금의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의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선 보건복지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들도 목표와 방향은 정해졌지만 그에 대한 세부 정의나 정책 완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답은 정해져있는데 풀이과정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답을 정하고 방법을 찾는 것이 효율적인 일처리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무엇을 만들거나 현 체제를 흔들어야하는 상황이라면 보다 나은 방법을 창의적으로 찾기 위한 열린 논의 구조가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이해 당사자와의 협의는 이뤄져야하는 것이 아닐까.

창의력은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되고, 자유로운 사고는 제한이나 한계가 없는 환경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도, 논의도 부족한데다 방향을 알려준 상황에서 정부는 발표까지 1달여 남은 문재인 케어 세부계획으로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기다려진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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