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장사하던 낡은 가게 옆에 큰 가게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편리한 새 가게로 몰려갔다. 기존의 가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 가게의 장점을 받아들여 동일한 수준으로 올라서든지, 아니면 색다르고 차별화된 물건들을 들여놓아야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점포는 서로 발전하게 된다. ‘선의의 경쟁’이다.
그러나 새 가게 앞에 오물을 뿌리고 기구를 부수고 고성을 지르며 장사를 방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잘 해야 동귀어진(同歸於盡)이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두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등 지자체간의 의견 다툼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8일 헌법재판소는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2 제1·2·3항 헌법소원 심판 사건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상생발전을 위해 관할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다. 현재 전국 지자체 159곳에서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그간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등 지자체는 일관적인 주장을 앞세우며 대립해왔다. 전통시장 등 지자체는 ‘전통시장과의 상생을 위해서는 대형마트 규제가 필요하다’고 날을 세웠으며 대형마트는 ‘대형마트보다는 주차와 카드 불가 등 소비자 불편으로 인한 요소가 더 크다’며 규제 무용론을 내세웠다.
이날 지자체 측은 대형마트의 규제무용론에 대해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지만 2017년 한국법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매출이 늘었다”고 맞섰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법제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살펴본 결과 ‘대형마트 규제로 인한 전통시장 매출 증가’와 관련된 의미있는 내용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사후적 입법 평가’에 따르면 무영향 시장에 비해 대형마트영향 시장과 SSM영향 시장은 규제 이전인 2011년 대비 2014년 소폭 상승했으나 2015년에는 다시 소폭 감소했다.
영업규제가 소비자에게 미친 단기 효과 분석결과에서도 기존 대형마트 고객들의 월 평균 지출액이 1만9000원 감소했으나 감소분은 각각 전통시장과 준대규모점포로 나뉘어졌다. 평가서는 주말에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평일에 SSM을 이용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중·장기 효과 분석결과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 효과는 일 평균 지출액이 2만4000원 감소하며 지속됐으나 대형마트 대체 관계인 SSM은 8000원 올라 수혜를 봤다. 온라인과 무점포소매 역시 평균 1만3000원 늘어났다.
‘평소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고객’의 경우 규제기간 동안 지출액이 3만7000원이 늘어났으나 마트를 이용하던 고객의 지출액은 포함돼지 않았다. 따라서 평가서상 ‘대형마트 규제시 전통시장 활성화가 가능한가’에 대한 명백한 실효성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대형마트 측이 주장한 규제 무용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약점으로 지적됐던 카드 사용 불가와 주차장 역시 개선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기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통시장 내 신용카드 단말기 설치 점포는 61.8%에 불과했다.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주차장 역시 미흡했다. 서울지역 전통시장 주차장 보급률은 41.7%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통시장이 살아날 수 있는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강제로 오라고 손목을 잡아 끄는 것이 아니라, 오고싶게끔 만들어야한다. 내가 못살겠으니 같이 죽자는 좁은 시야로는 시장의 괴사밖에 불러오지 못한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