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분야의 기사를 쓰는 탓에 이따금씩 새로운 연구가 해외 유명 논문에 게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깜짝 놀랄만한 연구도 있거니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연구의 가치를 어떻게 실용화할 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차트나 임상에서 얻은 환자의 통계를 이중삼중으로 쪼개 논문으로 만드는 것은 논문을 위한 논문이며, 이러한 연구는 오롯이 논문 작성을 위한 사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논문 압박을 받는 의학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러한 자료를 병원 차원에서 대단한 연구 업적인냥 부풀려 보도자료를 뿌리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사실이다.
연구비에 대해 몇 마딜 적어야겠다. ‘연구개발비’는 말 그대로 연구에 사용되는 돈을 말한다. 연구과제협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두고 연구개발비라 부르는데, 연구비를 ‘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뭘까. 압도적인 혜안? 뛰어난 연구?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쎄요’다.
일단 연구개발비에 대해 알아보자. 항목 중 ‘다년도(단계별) 협약’은 2년 이상의 계속 과제 중 연구기간을 단계별로 나눠 협약한 연구개발과제를 의미한다. 최초협약연도에 정해진 단가를 적용, 총 연구기간이나 단계별 연구기간을 대상으로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비목’은 연구개발비 중 직접비와 간접비로 구성된다. ‘정산’은 주관연구기관의 장이 제출한 연구개발비 사용실적보고서에 대해 실시하는 회계검사다. ‘사용 잔액’은 연구과제 종료 후 연구개발비를 사용하고 남은 돈이다.
그렇다면 ‘부당집행액’은 무엇인가. 회계검사 후 부당집행액으로 확정된 금액을 말한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 관리규정’,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관리지침’ 등을 준수하지 않으면 해당 사업비는 회수된다.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연구비 부정의 대다수는 연구개발비를 부당 집행한 경우다.
원칙적으로 연구비의 총량은 정해져있다. 파이의 가장 큰 부분(대단위 연구비)은 일부 특정 대학들에 몰려있다. 학계의 ‘독보적’ 위치는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받는다. 굵직한 연구비를 받는다고 해서 연구원 인건비 역시 충분하게 책정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연구비가 두둑하든 아니든, 대개의 연구원 및 석·박사생들은 4대보험조차 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다.
연구 과제 선정의 어려움 때문에 연구자들은 아우성이다. 연구비 부정 수급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기울어진 연구비 집행에 기인한다. 과제를 ‘따내는’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정치적인 힘이 작용하고, 줄을 서고, 학생들의 노동력을 강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좀 더 들여다보자. 연구 부정은 여러 형태가 있다. 가짜 영수증이나 학생 연구원에게 급여 통장을 상납토록 하기도 한다. 그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에 이르는 연구비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벌과 인맥에 적잖은 영향을 받는다는 건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려면 일단 연구책임자가 명문대 출신이면 좋다. 정치력도 요구된다. 학계 정치력이 강한 인사 뒤에서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더 좋다. 논문을 다 쓴 후 ‘제1저자’란은 비워두고 이 인사의 이름을 넣어 논문을 완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기에 연구비를 집행하는 정부부처와의 스킨십도 필요하다. 여기서도 학맥과 인맥은 강하게 작용된다. 연구비 집행의 권한을 가진 이들 중에 동문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상의 기술한 내용들은 연구비리의 한 프로세스를 적은 것이다. 이러한 연구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은 소수이고, 대다수는 여전히 연구비 기근 현상에 시달린다. ‘기초’ 연구비는 대개 2억 원이 최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라도 쪼개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연구 자체가 ‘스톱’된다. 그러다보니 기초 연구자는 늘 돈에 쪼들리고 격무에 시달린다.
이런 구조는 연구생과 대학원생의 ‘열정페이’를 양산한다. 연구생과 대학원생을 향해 ‘배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쓰고 ‘열정페이 강요’로 읽는 ‘관행’ 말이다. 때문에 앞서 거론한 꼼수들이 관행이란 명목으로 은밀히 이뤄진다.
언제가 연구과제비 선정과 지급에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보도 후 상당히 많은 독자들로부터 전자우편을 받았다. 우편으로 추가 제보를 한 이들도 있었다.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연구자들에게 뭉텅이 연구비가 집행됐다는 사실을 수차례 보도했지만, 관계 당국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흐지부지됐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전체 연구비 액수는 사실상 정해져 있다. 누군가에게 연구비가 지원되면, 다른 연구자는 연구 기회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연구 지원 선정은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오롯이 연구의 가치로만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이러한 기본이 무너진데서 시작된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