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혁신의료기술 시장진입, 빠르면 OK?

첨단혁신의료기술 시장진입, 빠르면 OK?

지름길 제시한 정부에 시민사회, ‘환자 마루타화’ vs 업계, “우리만 뒤쳐져”

기사승인 2018-09-05 08:00:00

지난 7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첨단혁신의료기술을 만들고도 각종 허가와 평가로 인해 시장진입에 1~2년 이상을 기다려야하는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지름길을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첨예하게 갈린다.

당장 보건의료시민사회단체와 의료계는 우려를 표했다. 첨단혁신의료기술이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안전성과 유효성, 비용효과성을 평가하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줄일 경우 자칫 환자의 안전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반면 업계는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쏟아지는 신기술들 사이에서 오랜 기다림은 치명적이라고 호소한다. 세계가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술이 시장에 출시될 때면 이미 과거의 기술로 전락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동력을 잃는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4일 신의료기술평가를 담당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원장 이영성, 이하 NECA)이 개최한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체계 마련을 위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개선 공청회’에서도 양상은 그대로 나타났다. 정부는 낙관했고,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걱정을, 산업계는 기대를 드러냈다.

◇ 의료기술 시장조기진입을 위한 정부의 큰 그림, ‘규제완화’

앞서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 불리며 빠르게 변해가는 산업구조와 시장상황, 신기술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성이 확보된 첨단혁신 의료기술 및 기기의 빠른 시장진출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놓은 해법은 ‘선 진입, 후 평가’ 방식이다. 규제완화 차원에서 몇 단계로 나뉜 인·허가 과정을 하나로 통합해 시장에 우선 진입시킨 후 충분한 근거를 확보해 다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임상적 근거를 마련하느라 사장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준과 방향도 대략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첨단혁신의료기술의 선진입·후평가를 위한 공동연구에 참여 중인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서준범 교수는 이날 공청회에서 첨단혁신의료기술의 분류방법과 정의에 대해 제안했다.

그는 첨단혁신의료기술을 ‘시간적, 융복합적, 사회가치적 특성을 가진 의료기술’로 정의하고, 신의료기술 평가방법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할 연구결과가 부족해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가 필요한 의료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혁신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기술 중 환자의 의료결과에 현저한 영향이 예상되는 기술이거나 혁신의료기기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희귀질환 혹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하며 대체기술이 없어 임상요구가 크지만 남용가능성은 낮은 경우, 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등의 사회적 가치가 높은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고 봤다.

역시 공동연구에 참여 중인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이의경 교수는 이 같은 정의를 바탕으로 첨단혁신의료기술을 별도로 평가할 때 고려해야할 가치(항목)를 질병, 임상, 사회, 기술적 측면에서 ▶질병의 심각성과 희귀성 ▶환자의 신체적 부담과 삶의 질 ▶환자의 경제적 부담과 기술의 남용가능성 ▶대체기술 유무와 기술의 혁신성 총 8가지로 분류했다.

아울러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시장에 빠르게 진입한 의료기술의 경우 3~5년간 의료현장에서의 사용방식과 효과 등을 상시관찰한 후 재평가해 건강보험 적용범위확대 또는 시장퇴출 등을 판단하는 안전장치를 둬, 신의료기술 평가제도의 합리성을 높이고 의료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국민보다 업계 생각하는 정부?

이에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박성호 교수는 정부의 규제완화방식의 인·허가 통합심사체계를 ‘허구’라고 비난했다. 성격이 다른 2가지 방식을 하나로 버무려내려는 시도이자 국민의 건강이나 산업의 건전성 측면에서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혹평이다. 

그는 “무엇을 신의료기술, 첨단혁신의료기술이라고 볼 것인지 정의도 아직 모호하다. 현재 AI(인공지능)가 접목된 진단기기의 경우 기술적으로는 혁신이지만 의료의 관점에서는 기존기술”이라며 “의료 입장에서 혁신이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시장진입과 함께 건강보험 급여 혹은 비급여 등 업체의 이익을 결부시키기에 문제다. 환자에게 돈을 부담시키거나 건보재정을 쓰기위해서는 근거가 확실해야한다”면서 안전성이 검증되면 시장에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사후평가를 통해 급여여부를 결정하는 형식을 권했다.

더불어 “소비자는 환자와 의료인이다. 어떤 기술이든 소비자를 만족시켜야한다. 만약 소비자가 사용해보고 정말 좋은 기술이라는 평가를 내린다면 업계가 요구하지 않아도 환자와 의료계가 먼저 요구하고 사용할 것”이라며 시장의 구조에 맡겨야한다고 주장했다. AI라는 말만 붙으면 통과하는 ‘디지털 예외주의(digital exceptionalism)’는 경계해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은 박 교수보다도 강한 우려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을 혁신성장의 아이템이 없는 정부의 조급증이 불러온 싸고 간단한 과거 정권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선행적으로 첨단의료기술의 정의와 그 전제가 되는 개념정리가 이뤄져야하며, 빠르게 시장에 진입시키겠다고 별도의 평가트랙을 만들겠다는 생각만하지 말고 제한된 요건 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비용효과성 등에 대한 근거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김 대표는 “전체 보건의료체계에서 의료인력이 부족하거나 의료장비, 인프라, 지역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의료기술이 집중되는 것은 보건의료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일이며 환자를 마루타로 여기는 것”이라며 “(규제완화와 같은) 공적접근은 보다 신중해야한다”고 경고했다.

◇ 지나친 걱정이라며 다독이는 업계, 정부 

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이상수 의료기기산업협회 상무는 일련의 우려에 “바뀐 것은 없다. 기관 간 협력을 통한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뿐”이라며 기존의 한시적 신의료기술평가, 제한적 신의료기술평가 등으로 불린 제도들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안전성이 검증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허가를 통과할 경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업계에서 10년전부터 제안했지만 국내 시장과 제도적 여건 등으로 포기한 방식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지금의 의료기기 규제완화정책이 나오게 됐다는 배경도 설명했다.

더구나 탄탄한 인프라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여타 후발주자나 국가에게 뒤처지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유연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기술의 난이도와 등급이 다 다르다. 하지만 모두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행정낭비이며 될 수도 없다. 원칙을 유지하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곽순헌 과장 또한 산업계의 요구가 우선된 판단이 아니며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는 일들이 아님을 거듭 해명했다. 나아가 환자의 관점에서 규제를 혁신하기 위한 고민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혁신첨단기술의 별도 평가트랙을 도입해도 환자의 안전성만큼은 확보한 가운데 잠재적 가치, 포괄적 가치를 판단하게 될 것이며 어떤 기술이든 환자 유해성을 3개 등급으로 나눠 침습과 관련된 행위는 심층평가해 환자가 마루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평가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내에는 신의료기술에 관한 법령을 개정해 시장에 진입한 의료기술에 대한 임상효과 등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재평가를 통해 문제가 있다면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곽 과장은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다. 첨단혁신의료기술의 범주는 어디까지일지, 잠재적 가치나 포괄적 가치의 범주, 가치평가 소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지속적으로 논의해 하반기에는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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