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료만 끼면 이상해지는 금융당국의 셈법

[기자수첩] 의료만 끼면 이상해지는 금융당국의 셈법

기사승인 2018-10-03 01:00:00

근래 금융당국의 행보가 의료와 관련된 사안에서 유독 이상하다.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균형을 잃고 갈지자를 그리는 모습이다. 의료기관을 대형할인마트나 백화점과 같이 취급하며 카드수수료 폭탄을 던지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암 환자를 거리로 내몰았다.

그 배경에 이념 간 충돌이 존재한다. 금융당국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이념을 수호하며 자유경쟁을 근간에 두고 있다. 반면 의료관련 분야는 균형적인 분배와 생명이라는 공통의 선을 추구하려는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다.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경제이념을 채택하고 있다. 힘의 추가 금융당국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이 같은 쏠림으로 인해 의료관련 사안에 대한 판단이 간혹 잘못되거나 의료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달라지는 경향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카드수수료율과 암보험 약관개정이다. 

의료기관은 국가가 정하는 기준과 비용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낸다. 주차장이나 장례식장 등 국가에서 허용한 몇몇 사업을 제외하면 별다른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비영리기관이다.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릴 수도 없고, 전단지 한 장 돌리며 호객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금융당국, 그 중에서도 금융거래에 대한 감독과 감시, 관리 권한을 가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의료기관을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동일하게 취급했다. 엄밀히 말하면 대형마트나 백화점보다 돈을 더 잘 버는 ‘기업’으로 봤다.

최근 금융위가 발표한 카드결제에 따른 신용정보 중개수수료인 ‘밴(VAN) 수수료’ 체제개편에 따라 2019년도부터 향후 3년간 적용될 수수료율의 경우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1.5% 내외인데 반해 의료기관은 동네의원부터 국내 최대병원인 빅5에 이르기까지 2%를 훌쩍 넘는다.

전자적으로 저장된 몇 바이트 크기의 신용정보가 결제금액에 따라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되는 이상한 셈법에 대한 문제는 뒤로하더라도, 가격을 마음대로 정하며 손실을 조율할 수 있는 기업과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수익의 1~2%만이 순이익이라는 의료기관을 동일선상에 놓고 더 많은 수수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심지어 지난 2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암 보험 약관개정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수준에서 결정됐다. 일각에서는 보험사의 사주를 받아 그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정부의 배려라는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의 27.6%인 7만8863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남녀를 떠나 국민 3명 중 1명이상이 암에 걸리는 상황이다. 더구나 해마다 21만명의 신규 암 환자가 발생한다. 반면 암 치료 등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83%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재난적의료비 지원을 확대하고 연간 본인부담 상한액을 낮추는 한편, 가계 부담의 한 축인 간병비를 줄이기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보장성 강화정책을 내놓고 시행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경제적 부담은 ‘파괴적’ 수준이다.

그 때문인지 암보험에 가입한 이들이 2016년 보험개발원 기준 2900만명에 달했다. 가입률은 약 60%다. 전체 국민 10명 중 6명이 암에 걸릴 경우 가계파탄을 불러올 수 있는 부담스런 의료비를 일부나마 방비하고자 보험을 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금감원의 발표는 암에 걸린 환자들과 암에 의한 신체적·경제적 손실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보험에 들었던 소비자들의 기대를 무너뜨린 결정이었다. 해석의 차이로 분쟁을 유발했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의료이용행태를 왜곡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미 암에 걸려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들이나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자 애써온 환자들이 비용부담을 느껴 병원을 나오고, 후유증이나 정부가 정한 5가지 유형의 암 직접치료 외의 치료를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암에 걸리진 않았지만 미리 대비하려던 이들도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원하는 특약을 추가로 가입해야하고, 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해야한다.

소비자단체는 금번 금감원의 약관개정이 잘못된 설계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환자들은 암에 대한 직접치료에 포함되지 않는 것까지 정해버림에 따라 암 치료가 마치 수술과 방사선, 항암약물치료인 것처럼 확정해버려 환자들에게 올가미를 씌워 더 불리하게 만든 경우라고 비난하고 있다.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의료는, 국민의 생명은 자유경쟁이나 손익을 따지는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십분 양보해 거래의 대상으로 둔다고 해도 생명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고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금융당국 또한 정부의 한 축으로 존재이유가 돈이 아닌 국민과 사회의 안녕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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