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우 중 제가 제일 건강해 여기에 나오게 됐습니다”
지난 12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는 암 환우들을 대표해 김근아 보암모(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증인 출석 직전까지 치열한 질의와 응답이 오가던 국감장은 김 환우의 증언과 함께 숙연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올해 국감은 불안한 경제 여건과 맞물려 사립 유치원 비리와 고용세습 문제가 주요 이슈로 주목받았다. 다만 누군가 가장 기억에 남은 한 장면을 묻는다면 서슴없이 암환우가 직접 증인으로 나서 보험사의 행태를 토로하는 이 장면을 선택하겠다.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신해 국회가 국정 전반에 대해 들여다본 후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련의 감사 활동이다. 그러나 최근 국감은 ‘누가 이슈를 더 잘 선점하느냐’를 경쟁하듯 국회의원들의 폭로전과 정쟁의 도구로 변질하고 있다.
이러한 국감 현장에서 오랜만에 뜻깊은 장면이 연출됐다. 정부와 법의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와 보험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암 환우들이 국정감사에까지 나와 토로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쉽게 이야기하면 20~30년 암을 대비해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해 왔지만 정작 암에 걸린 상황에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김근아 환우는 국감 증인석에서 “보험사들이 암의 ‘직접 치료’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보험사) 자문의의 판단으로 보험금 부지급이 결정됐다. (환자) 주치의의 의견은 자문의의 의견에 따라 모두 무시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직접치료와 관련된 내용은 약관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다. 암 치료와 관련된 명확한 보험약관이 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약관에 그런 내용이 있다면 보험사가 암 환우들에게 제시 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론 보험사들은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는 탄탄한 법적 논리를 세워놓고 있다. 약관의 문자 하나, 단어 하나까지 의미해석을 통해 부지급 근거를 마련해 놓았으며, 가입자와의 법원 소송을 통해 부지급 판결을 받아내고 있다.
결국 법적 논리를 내세운 보험사의 대응에 하소연할 곳 없는 암 환우들이 국감 증인으로까지 출석하게 된 것이다. 국감이 비록 이러한 분쟁을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방관하거나 보수적으로 대응하던 정부의 변화를 자극할 수는 있다.
실제 김 환우의 증언 이후 금융감독원은 윤석헌 원장과 담당 직원들이 나서 암 환우들과 직접 면담에 나서는 등 보수적이던 소비자 보호 태도에 변화의 기색을 보였다.
우리 사회 주변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이번 국감을 개기로 정부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 주길 기대하면서 내년 국감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국민을 대변하는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금융감독원은 이번 국감을 통해 드러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관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