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도 없는데 결혼은 먼 얘기 같고, 애 낳기는 무섭고. 낳으면 독박육아? 일도 잘리려나.”
지난 7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보고 내가 왜 결혼-임신-출산을 꺼려하는지 생각해봤다. 로드맵에는 그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제시했던 출산장려 위주 정책 대신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담았다. 경제적 지원, 일·생활 균형 지원, 육아휴직제도 개편, 남편의 육아참여 확대, 임금·채용 성차별 해소 등 결혼과 임신을 가로막고 있는 주요 원인들을 짚은 것. 이를 통해 2040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남녀가 평등한 일터나 가정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로드맵 대상자인 청년층, 가임기 여성인 내게 이 정책들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여전히 나는 결혼-임신-출산을 꺼리고 있고, 솔직히 말하자면 싫다기보단 무서움이 더 크다. 어렸을 때는 출산 전후의 고통이 무서웠고, 요즘에는 “결혼은 현실”이라고 외치는 기혼자들의 반대가 결혼 자체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중 하나가 ‘독박육아’다. 최근 인구복지협회가 2040세대 임산부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임신 중 집안일은 ‘배우자보다 본인이 거의 많은 부분을 하고, 배우자가 도와주는 편’이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배우자와의 관계만족도는 5점 척도에서 평균 3.5점 정도로 나타났는데, 배우자에게 불만족한 이유로는 ‘임신으로 인한 신체·정서적 변화에 대한 배우자의 이해·지지부족’이 46.6%로 가장 많았고, 두 번째로 가사와 육아분담(31.5%)이 많았다. 전문가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배우자가 가사를 ‘돕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 육아는 둘 중 한 사람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인식이 변화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이유도 비혼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취업난, 높아진 취업연령, 적은 연봉, 물가상승 등에 기인한다. 전국의 1인 청년가구 중 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곳에 살고 있는 비중은 전체의 22.6%를 차지한다. 서울은 40% 가까이 된다. 청년층의 주거빈곤은 뉴스에서만 나오는 일이 아니라 내게도 적용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미 오래전 연애와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했다는 의미의 3포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여기에 요즘 청년들은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고 해서 5포세대, N포세대라고 칭한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확정된 2019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청년 지원 및 일자리 예산이 삭감됐다. 감액 대상에는 취업성공패키지,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이 포함됐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말이 하루 이틀 나온 얘기도 아닌데 말이다.
‘태어날 때 자기 먹을 숟가락은 들고 태어난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믿고 살았는데, 요즘 청년들은 혼자 살기도 버거워한다. 20대가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도 현 정부가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