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0주년 맞은 정태춘·박은옥 “주변에서 또 깃발을 들라네요”

데뷔 40주년 맞은 정태춘·박은옥 “주변에서 또 깃발을 들라네요”

기사승인 2019-03-07 14:24:26

가수 정태춘은 살면서 깃발을 세 번 들었다. 1980년대 후반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순회 공연으로 전국을 돌며 전교조를 위해 깃발을 든 것이 첫 번째고, 1990년 음반사전심의 철폐를 주장하며 든 것이 두 번째다. 세 번째 깃발은 2006년 3월에 들었다. 정태춘은 자신의 고향인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 싸움에 온몸을 던졌다.

‘노래 운동가’ ‘문화운동가’ ‘실천적 예술가’…. 이런 표현이 정태춘의 이름 앞에 붙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1978년 데뷔곡 ‘시인의 마을’로 큰 인기를 얻은 이 포크가수는 ‘연예인’의 길을 걷는 대신 운동가가 됐고 시인이 됐다. 

정태춘은 7집 ‘아, 대한민국’(1990),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등의 음반에서 억압과 모순에 저항하는 시대정신을 적극 끌어안았다. 1996년 음반 산업 심의 제도 철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도 정태춘이다. 그는 ‘아, 대한민국’을 심의 없이 비합법 유통하며 한국공연윤리위원회에 반발했고, 6년간의 투쟁 끝에 사전심의제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의 곁엔 박은옥이 있었다. 박은옥은 가수이면서 정태춘의 음악적 동지였고 또한 그의 아내이기도 하다. 1980년 결혼한 두 사람은 듀엣을 이뤄 활동했다. 박은옥은 정태춘의 음악에 운문적 서정성을 더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아 다시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발매를 기념한 공연 이후 7년 만에 마이크 앞에 선다.

7일 서울 퇴계로 충무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기자회견을 연 정태춘과 박은옥은 “데뷔 40년이 됐다고 해서 특별한 소회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오랜 시간 자신들을 기다려준 팬들과 자신들을 다시 무대에 올린 지인들에 대한 고마움은 크다고 했다. 정태춘은 “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들어준 분들이 많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감독과 배우, 소설가, 화가, 시인 등 각계각층의 문화 인사 144명이 정태춘과 박은옥의 데뷔 40주년 프로젝트를 위해 뭉쳤다. 이들은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을 꾸려 올해 콘서트, 출판, 음반, 전시, 학술 컨퍼런스, 트리뷰트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내달 13일 제주에서 시작하는 전국 순회공연이 그 출발이다. 정태춘과 박은옥은 15개 도시를 돌며 ‘날자, 오리배’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연다. 기념 음반 ‘사람들 2019’도 발매된다. ‘노인의 목소리로 젊은 시절의 노래를 불러보자’는 딸 정새난슬의 제안으로 기획된 음반이다. ‘빈 산’ ‘고향’ ‘나그네’ 등과 신곡 ‘외연도에서’ ‘연남, 봄날’이 실린다. 1993년 낸 ‘사람들’을 개사한 ‘사람들 2019’도 만나볼 수 있다.

“‘외연도에서’는 과거 여행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대천 앞바다에 있는 외연도에 들어갔다가 만든 노래입니다. 발표를 안 하고 있던 노래인데 이번에 내놓고 싶었어요. ‘연남, 봄날’은 우리 가족을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가족에게 최근 몇 년간 힘든 일이 있었고 거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봄기운을 느끼며 새 출발을 하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작 박은옥씨와 딸은 노래가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정태춘)

“(음반에 실릴 노래를) 저도 한 곡 불렀으면 좋겠다고 해서 ‘연남, 봄날’을 쓰게 됐어요. 정태춘씨가 가사를 쓰면서 본인은 울컥하셨다고 했는데, 저는 그 감정까진 안 간다고 했더니 서운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당신이 부르시라고…(웃음) 역시 만든 사람이 부르는 게, 감정이 더 섬세하게 전달되더라고요. 아마 이번 음반에서 본인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노래가 아닐까 싶어요.”(박은옥)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40 프로젝트 사업단의 주요 관계자들은 “정태춘 박은옥의 현재성에 주목해 달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정태춘은 스스로를 ‘시장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관계자들은 ‘대중이 다시 정태춘을 호명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몇 년 간 문명에 관한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는 정태춘은 “우리 문명이 만들어낸 산업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나보고 네 번째 깃발을 들랍니다. 시장성을 갖지 않는 것은 모두 사장되는 최첨단 산업문명 사회에서, 시장 밖에 있는 뭔가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시장의 매커니즘을 통하지 않고도 대중화 호흡할 수 있는 예술, (일명) ‘시장 밖 예술’이라는 화두가 우리 내부에서는 이야기되고 있고요. 기회가 되면 이번 프로젝트 안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태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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