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서 “살려주세요”…이대로 괜찮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서 “살려주세요”…이대로 괜찮을까?

기사승인 2019-05-07 11:06:49

“한 번만 살려주세요.”

엠넷이 ‘프로듀스X101’ 방영에 앞서 재방송한 ‘프로듀스101 시즌2’에선 연습생들의 이런 호소가 끊이지 않았다. 국민 프로듀서로 일컬어지는 시청자의 투표수에 따라 연습생들의 탈락 여부가 결정돼서다. 매 시즌 매 회 “국민 프로듀서님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꿈’ 앞에서 연습생들은 ‘을’이 된다. 이들을 보호해줄 장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일 방송한 ‘프로듀스X101’ 1회를 보자. 가수와 안무가, 보컬 코치 등으로 구성된 ‘트레이너 군단’이 이날 등급 평가를 위해 무대에 선 연습생들에게 강조한 건 ‘간절함’과 ‘노오력’이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들에 대한 평가가 대표적인 예다. 춤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받은 송형준과 강민희가 어떤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하느냐고 되묻자, 트레이너들은 “간절함이 안 보인다”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너희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란 치타의 말은 연습생들을 몰아세우는 그들의 모습 앞에서 힘을 잃는다. 연습생들은 혹독한 경쟁 안에서 훌륭한 인성까지 증명해내야 한다. 

종합편성채널 예능 사상 최고 시청률(18.1%, 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을 기록하며 종영한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여성 혐오 문화에 근간을 뒀다는 비판에 시달려온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를 콘셉트로 내세운 데서부터 ‘내일은 미스트롯’은 날선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성 출연자들의 신체를 부각시키는 연출로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인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서예진 국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참가자들이 예선을 치를 때 자기 옷을 입고 왔는데, 그 옷들이 더 야했다. 우린 그 의상이 그분들이 딛고 선 현실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를 “무명의 현실과 무대와 생계에 대한 절박함을 보여주는 위악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위악의 표현’을 눈요깃거리로 연출했다는 데서 나온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트로트 가수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관을 심어줄 것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연예계는 감성이 지배하는 시장이다. ‘진정성’은 대중의 감성에 호소할 ‘치트키’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꿈을 향한 참가자들의 간절함을 강조하고, 이들의 성장 드라마를 부각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간절함을 보여주기 위해, ‘프로듀스101’ 시리즈는 가학적인 연출을 택했고 ‘내일은 미스트롯’은 선정적인 의상을 택했다. 심지어 참가자들에게 혹평을 빙자한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던 JTBC ‘믹스나인’은 약속했던 데뷔마저 이뤄주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청자들 사이에선 새로운 유형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갈망이 높아진다. 경쟁에 천착하기보단 ‘음악’ 자체에 집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프로듀스101’ 시리즈나 ‘내일은 미스트롯’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구태의연하다”고 진단했다. 이 프로그램들이 내세운 경쟁 코드가 “진행 방식이 빤하고 피로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더 이상 주효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 평론가는 “JTBC ‘슈퍼밴드’의 경우, 시청률은 낮지만 참가자들의 협업과 이를 통해 만들어질 새로운 음악에 대한 기대를 원동력으로 삼는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내다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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