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저임금 157만원, 부족하지 않아요”

[기자수첩] “최저임금 157만원, 부족하지 않아요”

기사승인 2019-06-21 05:00:00

“월 157만원, 생계 곤란하게 할 정도 아니다.”

지난 13일 헌법재판소가 진행한 ‘2018년·2019년 최저임금 고시’ 헌법소원 공개변론에서 중소상공인협회 측 대리인이 한 말이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배경은 다음과 같다. “생계를 위협할 정도의 최저임금이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겠지만, 기존 최저임금이었던 월 157만원은 생계를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던 중 나왔다.

이 말이 헌법재판소 브리핑룸에 울린 순간, ‘아’ 하는 기자들의 탄식이 나왔다. 논리 자체에 대한 반대의 반응일 수도 있고, 발언에 묻어난 경솔함에 대한 짜증이었을 수 있다. 사실 최저임금은 찬반양론이 팽팽한 만큼, 인상에 반대하는 기자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저 말 자체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찬반을 떠나, 하나같이 ‘아뿔싸’ 였다. 

언어는 사람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사람의 인식과 생각이 은연중 묻어난다. 저 발언만 두고 본다면 ‘먹고 살만한데, 왜 최저임금을 올리나, 돈을 달라는 떼쓰기가 아닌가’라는 내면의 ‘교만’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두렵다. 말의 앞뒤 정황을 고려해도, 분명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특히 ‘생계’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는 더더욱 조심했어야 한다. 

저 말의 진위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 사람이 한 달을 살기에 157만원은 부족한 금액이 아닐 수 있다. 협회 측 대리인이 한 달에 157만원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왔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국내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것을 모두가 인정한 상황에서, 타인의 생계를 두고 저리 쉽게 운운한 것은 충분히 ‘교만’으로 비친다. 

협회 측 대리인의 논리는 이처럼 필요 없는 ‘사족성’ 발언으로 인해 공허한 외침이 됐다. 현재 최저임금 인상 반대 논리가 대중에게 먹히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교만’한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하 논리를 펼치는 학자들 중에선 경제적 데이터를 들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일부는 이들의 근거에 ‘교만’을 더한다. 

사실 이날 공개 변론의 핵심은 고용노동부와 협회 측 대리인 간의 변론이 아니었다. 양측의 참고인으로 나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의 설전이었다. 최저임금의 인상의 위헌 여부, 그 경제적 효과를 놓고 찬반 양측 진영에서 한 번씩 고려해볼 만한 생산성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감정보다는 비교적 근거와 주장이 앞섰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죄악은 첫째도 교만, 둘째도 교만, 셋째도 교만"이라는 말을 남겼다. 교만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일 터다. 우리는 모두 교만을 저지르며 산다. 사실 이 글 역시 교만으로 비칠까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앞선 ‘157만원 발언’은 분명 교만이었다고 꼭 말하고 싶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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