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귤청을 만들었다. 제주에서의 새로운 생활경험이다. 풋귤은 2016년부터 유통이 허용되었으니 아마도 그 이전에는 이곳 주민들 사이에 알음알음으로 풋귤청을 만들었을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 입장에서는 따 낼 수밖에 없는 덜 익은 과일이지만 그 한 알 한 알이 아깝고 소중했을 터이니 그냥 버리지는 않았을 듯하다.
8월 하순부터 며칠 동안만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8월 20일 세화 오일장에 가서 풋귤 5kg을 샀다. 깨끗이 씻고 물기를 말린 다음 얇게 썰어 놓으니 보기에 좋았다. 껍질은 짙은 초록색인데 과육은 아직 맑다. 더러 조금 일찍 익어가는 귤은 노란 색을 띠기 시작하며 침샘을 자극한다. 미리 준비한 커다란 유리병에 거의 비슷한 무게의 설탕과 함께 버무려 넣고 밀봉해 두었더니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설탕이 다 녹았다. 하루 더 기다려 냉장고에 넣었다.
찬 물에 섞어 마셔보니 귤의 신맛과 단맛에 연한 쓴맛도 느껴지고 귤향과 귤껍질향도 풍긴다.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맛이 더 깊어진다고 한다. 가을 숲길과 오름 걸을 때 한 모금씩 마시기 좋은 음료가 익고 있다. 9월엔 오름을 걷든 숲길을 걷든 보온병에 얼음과 함께 풋귤 음료를 담아 갈 생각이다. 아직 따가운 햇살을 견디며 걷다가 마시는 이 특별한 음료 한 모금이 새로운 힘을 줄 듯하다. 제주의 가을 길이 기다려진다.
1990년 여름은 가을에 대한 기대 속에서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형체도 무게도 알 수 없는 짐을 끌어안고 나는 직업 없이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8월 중순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조간과 석간신문 4 종류를 배달받아 구인광고를 살폈다. 지난 2년 동안 영어로 발행되는 월간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어느 매체든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뽑는 다는 크고 작은 매체와의 접촉이 반복되면서 내 경력이 취업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번듯한 직장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내 또래 사람들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따라가겠다는 욕심도 버렸다. 어디에서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곳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눈에 띄는 크기의 구인광고부터 한 줄짜리 광고까지 관심을 가질만한 직종에 대해서는 그냥 넘기지 않고 전화를 했다. 33살의 구직자에게 기회를 줄만 한 곳은 많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기회라도 버릴 수는 없으니 서류를 만들어 보내고 결과를 확인하고, 실망하며 또 구인광고를 읽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해 안에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내 앞날이 얼마나 암울하게 펼쳐질지 알고 있으므로 하루하루 조간신문과 석간신문에서 찾아내는 작은 구인광고라도 내게는 절실한 기회일 수 있었다.
9월 중순에 접어든 어느 날 정말 한 줄짜리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편집유경험자구함’이라는 문구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담당자와 전화 통화 후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보니 우편으로 발송해서는 늦을 듯했다. 다음날 직접 접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퍼붓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동안 경인선 전철이 침수되어 운행을 일시 중단한다는 뉴스가 들렸다. 담당자에게 전화해 사정을 이야기 하니 접수 마감일을 늦출 수는 없다고 한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비를 바라보다가, 뉴스를 기다리다가 신문의 구인광고를 읽다가 그날 하루가 지나갔다. 내게 절실한 취업 기회 하나가 비와 함께 그렇게 사라졌다.
함덕을 출발하는데 차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 듣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지역에 따라 날씨 변화가 심하니 용눈이오름엔 비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용눈이오름은 아래에서부터 어디 한 곳 모나지 않은 능선이 몇 굽이나 끝없이 겹쳐지고 펼쳐지며 올라가 있었다. 오름 아래 넓은 초지엔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올려다보니 저 멀리 오름 능선 위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려오는 사람들 중 더러는 우산을 쓰고 더러는 비옷을 입고 있었다.
빗줄기가 조금 더 잦아졌다. 주차장 입구에 컨테이너를 개조한 작은 상점을 살폈다. 아내는 말린 고사리에 관심을 두고 상점 여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 용눈이오름에서 지난 봄 꺾어 말린 고사리라고 한다.
“봄에 아무나 고사리 꺾을 수 있어요?”
“그럼요. 주인이 따로 없으니까요. 고사리 꺾어 말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꺾어 말려본 사람만 알아요. 친한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은 맘이 들지 않는다니까요.”
“그렇게 힘들어요?”
“고생한 것에 비하면 싸게 파는 거죠.”
고사리 한 봉을 사고 나니 비가 잦아들었다. 배낭에 비옷을 챙겨 넣고 용눈이오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 파이프 철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말들이 방목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치해 둔 듯했다.
철책 안 방목지에 억새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길 가 억새풀을 살피려 허리를 숙이는데 꽃 한 송이가 내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갈라지지 않은 원통형 꽃잎 끝으로 연한 분홍이 감돌았다. 야고였다. 며칠 전 산굼부리를 걷다가 억새 틈새에서 처음 본 꽃이다. 제주에 와서 처음 보았고 그리 흔하지도 않은데 이 길에서는 몇 걸음 옮기면 하나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묘하게도 꼭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는 길가의 억새포기에서 보인다.
이질풀과 송장풀 그리고 잔대꽃도 이곳에선 흔하게 보였다. 무릇도 철을 알고 분홍색 꽃을 피워 올렸고 가끔은 철 늦은 찔레꽃도 한 송이 씩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용눈이오름 능선에 오르기까지 크지도 않아 어지간히 관심을 두지 않고서는 눈에 띄지 않는 꽃들과 눈 맞추느라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풀과 꽃을 살피고 그 향을 느끼며 걷는 시간이 즐거웠다.
오름 능선에 올라서고 보니 용눈이오름은 조금 복잡하게 생겼다. 대부분의 오름이 가운데에 둥글거나 말굽형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용눈이오름은 분화구가 세 개나 된다. 분화구 주변의 능선도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오르다보면 내려가고 다시 올라간다. 오름엔 나무가 거의 없고 온통 풀과 억새로 덮여 있다. 아직 어린 곰솔 몇 그루가 힘차게 자라고 있을 뿐이니 숲을 이루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인다.
능선에 오르면서 더 바빠졌다. 억새와 잡풀만 있을 줄 알았던 능선엔 나와 눈 맞추기를 기다리는 작은 꽃이 더 많았다. 눈을 들어 조금 멀리 보면 또 다른 오름들이 손짓을 한다. 나무도 거의 없어 민둥산처럼 보여 참으로 단조롭게 생긴 듯 보이는 용눈이오름은 그 능선에 오를 때까지, 또 능선에 올라선 뒤에도 서 있는 곳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든 제주에 와서 오름을 보려거든 제일 먼저 용눈이오름에 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