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청와대가 국내외 정치·외교·안보·경제·사회 분야 현안을 두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차를 크게 좁히지는 못해 정쟁의 소용돌이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몰아칠 전망이다.
앞서 여·야 5당 대표들은 10일 오후 6시경 청와대 대통령 관저로 초대받아 문재인 대통령과 돼지갈비에 막걸리를 앞두고 175분간 각종 국내외 현안을 논의했다. 회담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졌지만, 선거법 개정 등을 두고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회동에 참여한 여·야 5당 대표들의 직·간접적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 모친상 조문에 대한 답례이자 반환점을 막 지나친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시작을 알리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이날 회동은 대체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정 대표에 따르면 이날 회동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돼지고기 소비위축을 촉진하기 위해 메뉴로 선정된 돼지갈비구이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추천한 송명섭 막걸리, 평택쌀로 만든 천비향 약주가 돌며 관련 이야기들로 시작됐다.
이후 문 대통령의 모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등 외료·안보 관련 현안으로 주제가 흘렀다. 남북관계나 한일관계 등 외교·안보에 관한 위협이나 미·중 무역갈등 등 우리경제를 둘러싼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참석자들 간 공감대도 형성됐다.
◇ 발목 잡힌 남북관계, 혼란한 한일관계 대응방안 ‘공감대’
화두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 대표는 “금강산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북미회담의 성공 뒤로 갖다 놓다 보니, 남북관계의 레버리지(영향력)를 다 잃게 된 것 아니냐”면서 대북 영향력 회복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당부를 문 대통령에게 전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과거 영변 핵 폐기 제안 등 구체적인 방법론이 북한에서 먼저 제안했던 사례를 들어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 ‘대화는 하되 제재는 유지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식은 남북관계를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북미회담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공감한다. 북미회담이 아예 결렬됐거나 그러면 조치를 했을 텐데, 북미회담이 진행되며 대화가 될듯 했고, 미국이 보조를 맞춰달라고 하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들 대표들의 당부에 공감하며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통한 관계개선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시간가량 이어진 북한 관련 대화에 이어 떠오른 주제는 강제징용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악화된 한일관계였다. 그리고 경제와 안보를 결부시켜 풀어가는 것이 옳지 않지만, 일본의 경제침탈과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해결을 위해 초당적 협력과 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뜻에 대표들 모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 화두 던져진 민생·경제·노동 현안들… 국회로 넘겨진 ‘공’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요구하며 대통령을 향했던 당부의 목소리는 민생현안을 비롯해 노동 및 경제 분야의 다양한 현안에서 그대로 국회로 돌아갔다.
서민경제의 어려움이나 노동환경 개선 등 당초 대통령의 공약이나 정부가 제시한 목표 달성을 위해 신뢰를 쌓고 의지를 표현해야한다는 대표들의 지적에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뜻을 모으는 등 국회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뜻을 전한 것.
실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임기반환점을 맞아 위기에 빠진 경제에 정책전환이 필요하다”며 한국당이 제시한 ‘민부론’과 ‘민평론’을 검토해 국정에 반영해달라는 당부에 ‘책을 보내달라’고 화답하면서도 “(여야가) 경제를 염려하는 것은 공통된 것이니 경제 관련 법안을 신속히 해달라”고 응수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당의 협조와 소통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의 어려움이나 노동개혁의 문제를 언급하며 정부의 책임 있고 과감한 정책을 주문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의 말에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억지로 구조조정을 할 생각은 없다”거나 “탄력근로제 6개월 연장 같은 부분은 노동계에서 수용해줘야 하지 않냐”면서 역으로 국회에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 고성 오간 ‘선거법 개정’… 대통령이 ‘중재’하기도
대화에 많은 시간을 쓰진 않았지만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쟁점은 단연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선거법 개정’이었다. 화두는 정 대표가 던진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회담에서 대통령이 검찰개혁과 함께 강조했던 국회 구성방식을 바꾸는 선거법 개정이 8부 능선을 넘은 만큼 좀 더 힘을 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심 대표 또한 대통령께 정 대표와 유사한 내용으로 힘을 보태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황 대표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는 “선거제가 합의로 됐다는데 선거구역획정은 합의로 했지만, 선거제도는 한 번도 합의로 된 적이 없다. 쿠데타나 혁명, 날치기로 된거니 사실관계 분명히 해야한다”면서 “우리가 낸 안에 대해서 한 번도 협의 없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이에 다른 당 대표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실무회의도 있고, 여러 단위의 메커니즘이 있는데 한국당은 한 번도 제대로 협의에 응하지 않았지 않냐”고 했고, 손 대표는 “정치를 좀 똑바로 하시라. 나라를 위해 정치를 해야지 정권투쟁을 해선 되겠냐. 정치를 밀실야합으로 할 생각마라”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선거제 개혁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사람이 나다. 그리고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발족하며 여야 간 선거제 개혁에 합의한 바도 있다”면서 “따라서 국회에서 협의해 처리를 했으면 좋겠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갔지만, 협상은 열려있는 것 아니냐. 다만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해 어려운 점은 있는 것 같다”고 이들을 만류했다.
다만 “개헌안 냈다가 무색해진 일이 있기에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서, 그것이 총선 이후에 쟁점이 된다면 민의에 따른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해, 국민의 뜻을 빌어 21대 국회의원 총선에 적용할 만큼 선거법 개정을 급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기에 국회에서 충분히 협상하고 합의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의도를 전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