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추위가 찾아오는 이맘때에는 많은 가정에서 내년까지 먹을 김치를 담는 김장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김치라는 단어는 ‘채소를 소금물에 담그다’는 뜻의 한자어인 ‘침채(沈菜’)에서 유래하여 ‘딤채’, ‘김채’의 순으로 변화되어 오늘날의 ‘김치’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 내내 먹을거리인 김치를 한목에 담가두는 일이라는 의미의 ‘김장’은 한자어 ‘침장(沈藏)’에서 유래하여, ‘딤장’을 거쳐 요즘에는 ‘김장’이란 순우리말로 불린다.
이런 김치를 담그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배추’는 한자로 백채(白菜), 의서에 기재된 한약명으로는 숭채(菘菜)로 불린다. 이는 “배추가 추운 겨울을 견뎌내어 사철 언제나 볼 수 있는 소나무의 기운을 닮은 채소이기에 소나무 송(松)자 위에 풀 초(草)자를 붙여 발음은 숭(菘)이라고 한 것이고, 배추의 색이 푸르지만 속은 하얗기 때문에 이것을 또한 백채(白菜)라고 한다“고 고서(古書)에 기재되어있다.
김장은 젓갈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봄부터 고추나 마늘 등 대표적인 양념류들과 배추, 무 등 주요 재료 채소들을 준비하는 가을을 거쳐 한겨울에서 봄까지의 비타민 등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김치를 만드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의 긴 과정을 일컫는다.
미국의 건강 전문 월간잡지인 `헬스(Health Magazine)’에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는 십자화과 2년생 식물이다. 배추에는 100그램당 비타민 C 32mg, 칼륨 230mg, 칼슘 55mg 외에도 철분, 회분 등이 함유되어 있어 비타민과 무기질 공급이 부족하기 쉬운 겨울철의 대표적인 채소다.
김치는 익어감에 따라 항균작용을 한다. 숙성 과정 중 발생하는 선옥균의 하나인 젖산균은 새콤한 맛을 더해 입맛을 당기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장 속의 다른 악옥균의 작용을 억제하여 이상 발효를 막을 수 있다. 또한, 병원균을 억제하기에 겉으로는 아토피 피부염 완화 효과를 나타내고, 김치의 풍부한 섬유소는 대장암을 예방하는 기능을 가진다.
한류열풍을 이끈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궁중음식 경연대회에서 재료로 받은 밀가루를 잃어버려 만두피를 만들 방도가 없어진 장금이가 배추로 만두피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배추로 만두피로 이용한 만두가 배추만두 즉 숭채만두이다.
배추로 만두피를 만들고 속엔 닭고기나 다른 야채를 속 재료로 이용한 숭채만두는 맛이 담백하고 깔끔해서 웰빙만두로 널리 알려져 해외에도 소개되고 있다. 음식과 약은 같은 원리라는 뜻의 식약동원(食藥同源)은 생약이나 그 밖에 약용 가치가 높은 음식을 잘 배합하여 조리한 음식이라는 의미의 약선(藥膳)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음식을 통한 치료법의 원리는 《식료본초》(食療本草)라는 한의학 서적에 잘 나타나 있다.
《식료본초》와 약선(藥膳) 이론은 바로 약선재료가 곧 《식료본초》에 기재된 약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당시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사백 여종의 식재료를 담고 있는데 《식료본초》는 약재이자 곧 음식재료들을 본초학적인 관점과 식품학적인 관점을 종합한 서적이다. 웰빙을 중요시하는 현대인의 건강에 도움을 주어 그 인기가 지금도 널리 퍼져가고 있다.
한의학의 중요한 이론을 담은 서적인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오상정대론>(素問 ;五常政大論)에는 인체에 질병이 발생했을 때 약물과 음식을 이용하여 치료법이 달라지는 원리를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黃帝께서 물으시길, 有毒한 약물과 無毒한 약물로 병을 치료할 때 어떤 원리가 있습니까?
岐伯이 대답하기를, 질병에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차이가 있고, 그 치료하는 처방에는 大小구별이 있고 약물은 독의 有無차이가 있으니 분명 정해진 복용법이 있습니다. 강한 毒性의 약물은 병증이 60% 정도 치료되면 복용을 그치고, 보통 성질의 毒性藥物은 70% 정도 치료되면 복용을 그치고, 毒性이 크지 않은 약물은 80%, 毒性이 없는 약물은 90% 정도 병이 치료되면 복용을 멈추고, 그 이후에는 곡식, 고기, 과일, 채소류 등의 식재료들로 몸을 보완하면 완전히 치료될 것입니다.
帝曰.有毒無毒.服有約乎
岐伯曰 病有久新 方有大小,有毒無毒,固宜常制矣.
大毒治病,十去其六,
常毒治病,十去其七,
小毒治病,十去其八,
無毒治病,十去其九,
穀肉果菜,食養盡之.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김장을 하는 지금 이 시간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추운 겨울 내내 밥상을 채워줄 영양가 높은 김치를 만들며 가족 간의 정을 확인하는 시간을 통해, 흔하고 소박한 채소의 하나일 뿐이지만 영양학적으로나 예방치료 면에서 높은 효과를 지닌 배추의 의미를 생각해봄 직하다.
박용준(묵림한의원 원장/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