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의 장남 재헌씨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에게 사과했습니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지 석 달 만에 다시 광주를 찾은 겁니다. 재헌씨는 지난 4일 광주 남구에 있는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했습니다. 오월어머니 집은 5·18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이 희생되거나 피해를 당한 이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재헌씨는 사전 연락 없이 이곳을 찾아 관계자 2명과 30분가량 대화를 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는 “병석에 계신 아버님을 대신해 찾아왔다”면서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노씨의 회고록과 관련해 “개정판을 낼지 상의해봐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재헌씨의 행보는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앞서 8월에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한 사실이 알려졌었는데요. 노씨는 당시 방명록에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추모 과정에서 “아버지께 사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많은 이가 놀랐었죠.
노씨와 전두환씨 직계가족 중에서 민주화운동과 관련, 사죄를 한 사람은 재헌씨가 처음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오월 영령과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탈취한 권력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의무와 책임을 지는 것이겠죠. 어떤 이들은 재헌씨의 행보를 두고 ‘연극’과 ‘거짓’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한 서린 매듭을 풀기 위해 누군가는 용기를 냈다는 점입니다. 비록 손가락질받더라도 말이죠.
아버지가 잘못한 일을 아들이 사과하는 모습은 씁쓸합니다. 그러나 전씨가 재판에 참석하지 않고 골프를 칠 때, 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칠 때 누군가는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입니다. 재헌씨의 사과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운동에 담긴 분노와 슬픔을 뒤로하고 화해와 치유의 길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