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기필코 막아내겠다고 약속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국회통과를 저지하지 못한데 대해 국민들 앞에 사과했다. 하지만 공수처에 대한 우려를 거듭 표명하며 국민들이 내년 총선에서 이날의 결과를 심판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문 의장을 막아선 한국당의 방해를 뚫고 30일 오후 6시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30여분 늦게 개의했다. 이어 지난 28일 자정으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마무리된 공수처 설치법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나아가 한국당이 요구한 무기명 투표와 기존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합의안을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권은희 의원 등이 재수정한 법률안을 모두 표결에 붙여 부결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국회의장석을 둘러싼 인간장벽이란 최후의 수단도 문 의장의 ‘질서유지권’과 지난 28일 연출된 동물국회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형사고소를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의 엄포에 맥없이 무너졌다.
이후 이뤄진 표결방식에 대한 투표과정에서도 범여권이 뭉친 ‘4+1 협의체’의 단단한 연대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밖에 문 의장을 향한 비난과 공수처법의 문제점, 제1야당을 철저히 외면한 국회운영 등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고, 반쪽이 된 국회는 공수처 설치법에 대한 ‘4+1 협의체’의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관련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9년을 하루 앞둔 오늘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에 의해 악법 중 악법인 공수처법이 날치기 처리됐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어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의 비리 은폐처이고 친문범죄 보호처이자, 북한의 보위부, 나치의 게슈타포 같은 괴물이 될 것”이라며 “위헌 선거법 불법 날치기로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저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비판과 견제 세력을 위축시키기 위해 공수처를 탄압의 도구로 활용할 것이다”라고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문 정권은 울산시장 선거공작, 유재수 감찰중단, 우리들병원 대출비리 등 3대 국정농단을 통해 부패와 범죄가 드러나자 원안보다 더 악마적인 공수처 법안을 만들어 불법 처리했다. 대통령도 수사 받아야 할 정권의 범죄혐의가 드러나자 검찰수사를 무력화하고 범죄와 부패, 비리를 덮기 위해 독재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악법을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난했다.
현 정권을 향한 비난과 함께 심 원내대표는 국민을 향한 사과와 당부의 말도 남겼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쌍둥이 악법을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며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따르지 못했다”면서 “한국당으로선 사력을 다했지만 이성도 없고, 상식도 없는 좌파 막가파들에게 짓밟혔다. 죄송하고 면목 없다”고 우선 고개를 숙였다.
덧붙여 “이제 좌파독재의 길로 폭주 기관차처럼 치닫는 문재인 정권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힘은 오직 현명한 국민 여러분만이 갖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저들을 심판해 달라. 한국당이 저들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달라”고 내년 선거에서 한국당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체제로의 전환을 간접적으로 선언했다.
한편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문 의장은 이후 예산부수법안 중 ‘2020년도 무역보험계약 체결한도에 대한 동의안’ 등 정부가 요구한 동의안 3건도 일사천리로 표결에 붙였고, 남은 범여권 의원들은 이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민생법안 중 쟁점법안으로 분류된 통칭 ‘유치원 3법’은 상정 후 표결에 붙여지지 않았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