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이 터진 뒤 시간이 지나면서 이란 정부와 군부가 이 사건의 ‘원천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부각, 위기를 벗어나는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양새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가 ‘인간의 실수’로 여객기를 미사일로 격추한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다.
지난 3일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에 대응해 사건 당일인 8일 이란이 마땅히 해야 할 보복 공격을 단행한 뒤 전시와 마찬가지 수준의 첨예한 긴장 속에서 이런 우발적인 참사가 벌어졌다는 게 이란의 주장이다.
혁명수비대는 11일 격추 사실을 시인하면서 “사건 당일 우리가 이라크 내 미군 기지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에 미군이 반격하려고 쏜 크루즈 미사일로 여객기를 오인했다”고 해명했다.
따라서 미국이 이번 여객기 격추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란의 '태세 전환'은 고위 인사의 언급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4일 “이란 국민은 이번 참사의 원인이 사람의 실수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일을 벌어지게 한 환경을 누가 조성했나”며 “당시 비정상적 상황을 조성하고 이를 가열한 쪽은 미국이라는 점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국에 억압받는) 중동 전역에서 지지를 받고 미국의 음모를 좌절시키자 그를 테러로 살해했다”며 “미국의 엄중한 범죄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중동 전체가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무리한 ‘전략적 실책’으로 비판받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폭사를 다시 상기하고 '미군 철수'라는 의제를 다시 부각한 것이다.
3일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살해 뒤 여객기가 격추된 8일까지 약 닷새간 중동에서는 반미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란의 '대미 항쟁'이 명분상 유리한 국면이었다.
인도를 방문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15일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대테러전에서 가장 효과적인 인물이었다"라며 "내 말을 못믿겠다면 그의 죽음 뒤 누가 가장 기뻐했는지 보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그리고 다에시(이슬람국가)였다"라고 말했다.
라메잔 샤리프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도 14일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보복은 미군을 중동에서 완전히 쫓아내는 것이다"라며 "이라크 미군 기지에 대한 공격은 그 보복의 첫 단계다"라고 강조했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국방장관도 이날 시리아 국방장관을 만나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은 적(미국)의 무지한 행태다"라며 "중동 전체가 미군 주둔을 끝내기 위해 끈질기게 저항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란 보수세력은 13일부터 반서방 시위를 조직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이들은 11일 테헤란 아미르 카비르 과학기술대학 앞에서 열린 주이란 영국 대사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영국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 영국 국기(유니언 잭) 등을 태우며 반미, 반서방 구호를 외쳤다.
이란 사법부는 14일 "사법부의 관점으로는 영국 대사는 '외교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해야 한다"며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