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윤선우 “‘스토브리그’ 백영수처럼, 저도 성장했어요”

[쿠키인터뷰] 윤선우 “‘스토브리그’ 백영수처럼, 저도 성장했어요”

기사승인 2020-02-28 07: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닭장에 닭 한 마리가 새로 이사 왔다. 겁 없는 이 신참은 고참 닭들에게 ‘우린 한때 새였다’고, ‘다시 날 수 있다’고 종용한다. 고참들은 그를 무시하지만, 신참은 비행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그의 발이 땅 위로 떠 오른다. 2009년 거창전국대학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연극 ‘미친 새’는 이렇게 시작한다.

배우 윤선우는 이 연극을 위해 글자 그대로 ‘닭’이 됐다. 시작은 옥상에서 닭을 기르는 것이었다. 매일같이 닭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몸으로 익혔다. 기마 자세로 연기해야 하는 탓에 연습은 고됐다. 연습을 한 번 하고나면 체중이 1~2㎏씩 빠질 정도였다. 공연을 올린 지 벌써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윤선우는 아직도 그때 익힌 닭의 움직임과 리듬을 기억한다고 했다. 최근 서울 월드컵북로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윤선우가 들려준 얘기다.

“밑엔 타이즈만 입고 상체는 벗고. 머리는 닭 볏처럼 초록색으로 염색했었죠.”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백영수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모습이다. 윤선우는 이 드라마에서 프로야구팀 드림즈 백승수(남궁민) 단장의 동생이자 드림즈 전력분석팀 신입사원 백영수를 연기했다. 고교 시절엔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된 인물이다.

윤선우는 오디션을 통해 ‘스토브리그’에 발탁됐다. 그는 “등장인물이 모두 성장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끌렸다고 한다. 성장하는 건 백영수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장애를 두고 형이 자책할까 염려돼 늘 속내를 숨기기만 하다가, 드림즈 입사를 계기로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윤선우는 “영수를 연기하면서, 동생(백영수)의 과거가 형에겐 얼마나 큰 짐이었고, 또 형을 마음의 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은 동생의 마음은 얼마나 컸는지 점점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토브리그’는 제게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에요. 특히 ‘표현’을 많이 배웠어요. 저는 그동안 행동이나 액션을 중요하게 여겼거든요. 행동만 진실하면. 설령 표현이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배우의 진심이 전해질 거라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남궁민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행동은 기본이고 표현을 얼마나 섬세하고 세련되게 할지 고민하시더라고요. 말의 뉘앙스, 소리의 힘까지 예리하게 연구하고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언제나 이성적이고 신사적이던 백영수처럼, 윤선우도 인터뷰 내내 차분하게 말을 골랐다. 하지만 의외로 실제 생활에선 “모든 걸 이성적으로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인생,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서였을까. 윤선우는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며 미소 지었다. 요즘에는 자신을 열어두자는 생각을 특히 더 많이 한단다.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글귀도 데미안 헤세의 소설 ‘데미안’ 속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이다. 

윤선우에게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온 시기를 고르라면 경기대학교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원에서 공부하던 20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윤선우는 “뜨거운 청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친구와 300만원씩 총 600만원을 모아 극단을 만들었다. 첫 작품은 알베르 카위의 ‘이방인’. 연습실을 빌리고 극장을 대관하고 배우들 출연료를 주니, 공연 3일 만에 모은 돈이 동 났다. “그래도 반응이 좋았어요. 같이 작업해보자는 사람들이 꽤 많았죠.” 윤선우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월요연구실’을 차렸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결합하는 등 새로움을 찾아 헤맸다. 지하 연습실엔 곰팡이가 슬어 “거기만 갔다 오면 다들 몸이 아팠”을 정도였지만,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윤선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

지금은 각자의 일로 서로 바빠 연극을 올릴 여력은 안 되지만, 윤선우는 “극단이 해체한 건 아니니, 언젠간 다시 뭉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여 년 전 그가 마음속에 피웠던 불꽃은 여전히 맹렬하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출연할) 작품이 주어지면 참고할 만한 영화를 보거나 캐릭터를 준비하는 정도였는데, 이젠 연습할 거리가 생긴 거죠. 어떻게 하면 더 섬세해질 수 있는지, 쉬는 동안 많이 연구하고 연습하려고요.”

wild37@kukinews.com / 사진=935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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