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송금종 기자 = 인터넷전문은행을 두고 대화를 하다보면 기자는 이 말을 꼭 꺼내곤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처음 등장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고.
2017년 4월 KT광화문빌딩으로 기억한다.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 출범을 축하했다. 임 전 위원장은 케이뱅크를 가리켜 ‘산고 끝에 태어난 옥동자’라며 흡족해했다. 또 금융시장 판을 바꿀 ‘메기’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케이뱅크는 초반에 잘 나갔다. 주위에서 앱을 받고 카드를 발급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출한도는 높은데 금리는 낮으니 이용을 마다할 리 없었다. 이제는 소개할 때 ‘1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당시만 해도 케이뱅크 가입자라면 세련된 혹은 앞서가는 이미지로 비쳤다. 마치 쓰진 않아도 깔아만 두는 스타벅스 앱처럼 말이다.
꽃길만 걸을 것 같던 케이뱅크에게도 위기는 왔다. 카카오뱅크가 등장하면서다. 3개월 만에 불쑥 새 은행이 나오면서 모든 관심은 ‘카뱅’으로 옮겨갔다. 이전부터 메신저와 간편 결제기능으로 익숙한 국민에게 카뱅은 이웃 같은 존재였다.
카뱅은 케이뱅크와 혜택은 비슷했지만 차이점은 분명 있었다. 이를테면 ‘귀여움’이다. 카뱅은 캐릭터가 그려진 세로형 카드로 젊은 고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누구는 이를 혁신이라고도 했다.
케이뱅크는 움츠러들었다. 1금융권 은행이어도 기라성 같은 은행들을 상대하기 벅찼다. 케이뱅크는 그래서인지 동급인 카뱅과 자주 비교됐다. 그런데 ‘같지만 다른 은행’ 카뱅은 얄밉게도 쭉쭉 뻗어나갔다. 배가 아플 때쯤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증자였다.
케이뱅크는 자금문제로 꽤 오랜 기간 애를 먹었다. 물론 증자도 몇 차례 했지만 수요를 다 따라잡진 못했다. 결국 영업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주위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차가운 반응들뿐이었다. 걱정인지 야유인지 모를 표현들이 기사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문 닫는 거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최근 케이뱅크를 돌아보자면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나빠졌다. KT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떨어져나가면서 자금줄이 막혔다. 최후보루인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개정안마저 국회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내부에서도 고민이 깊어진 모양새다. 케이뱅크는 현재 주요 주주들과 법에 걸리지 않은 범위에서 증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새 행장도 내정한 상태다.
안쓰럽다. 촉망받던 기대주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케이뱅크 연혁을 보면 과거 준비법인 설립부터 오픈까지만 적어놨고 이후로는 기록이 없다. ‘은행의 새로운 상식을 열겠다’고 자신했던 1호 인터넷전문은행 스토리가 이대로 멈춰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 와중에 금융위원회가 자진해서 케이뱅크를 돕겠다고 나선 건 반가운 일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케이뱅크가 증자하는데 도울 일이 있으면 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 수장이 직접 지원을 약속했으니 한편으론 든든하다. 케이뱅크도 금융위 도움을 받아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확실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내달이면 인터넷전문은행이 도입된 지 꼬박 3년이 된다. ‘2세대’ 토스뱅크가 내년 여름 출범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된 요즘 인터넷전문은행이 세대를 거듭해서 언젠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질 날도 올 것이다. ‘선배’격인 케이뱅크는 요즘 많이 힘들다. 그래도 잘 견뎌내서 그 시대를 함께 열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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