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이 기사에는 ‘킹덤’ 시리즈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죽은 자가 되살아나 피와 인육을 탐하게 되는 역병이 동래에 번졌다. 세자 이창(주지훈)은 최전선에서 역병 환자들과 사투를 벌인다. 그곳에선 절망이 희망을 압도한다. 빛을 두려워 하던 역병 환자들은 어쩐 일인지 아침과 낮에도 활개를 치고, 병사들은 백명이 될까 말까 한데 역병 환자들 수는 수천이다. 코앞까지 몰려온 환자들,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무기. 이창은 절박한 심정으로 외친다. “물러서지 마라! 이곳이 뚫리면 모두 죽는다!” 지난 1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2 첫 화의 장면이다.
최근 온라인 화상 통화로 만난 배우 주지훈은 “이창이 왕세자이긴 하지만, (일반 백성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시즌 1때부터 했다”고 말했다. 영웅적인 면모를 타고 나는 시대극 속 왕세자들과 달리, 이창은 때론 어눌하고 찌질하고 공포에 떨기도 하면서 진정한 왕의 재목으로 성장해 나가서다. 주지훈은 이런 이창의 성장이 긍정적인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다고 믿는다. “이악물고 노력하는 이창의 모습이 관객에게 동질감 혹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시즌 1에서 조선시대에 좀비(역병 환자)가 등장하게 된 사연과 조씨 가문의 왕위 계승을 향한 조학주 대감의 탐욕 등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 설명이 이뤄진 덕분에, 시즌 2는 첫 회부터 좀비와 이창 일행의 혈투를 그릴 추진력을 얻었다. 안현(허준호) 대감의 부하들과 이창이 상주읍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이창·민치록(박병은)·영신(김성규) 등이 궁궐에서 좀비 떼에 맞서는 장면 등 화려한 액션 연기가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이번 시즌에는 특히 대규모 전투가 많아, 인물들끼리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액션 합(合)이 볼거리다. 연기 난이도는 높았지만 그만큼 기억에도 많이 남은 장면이었다고 주지훈은 회상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의미를 지니는 장면은 이창이 원자에게 세자 자리를 넘기고, 자신은 죽은 사람 행세를 하기로 한 순간이다. “권력의 개가 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선택이었죠. 그러려면 희생도 해야 하고 고통도 감내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돌아보면 ‘킹덤2’의 주요 장면들마다 이창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다. 좀비가 된 아버지의 목을 벨 것인가, 말 것인가. 안현의 당부대로 죽은 그를 좀비로 되살릴 것인가, 말 것인가. 주지훈은 “시즌 1에서 이창은 ‘쫓기는 자’였다.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것도 ‘내가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반면 시즌 2에선 이창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어떤 결심들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작가는 ‘킹덤2’를 “핏줄·혈통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이창도 ‘혈통’이라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왕의 아들이지만 후궁의 배에서 태어나 적통은 아니다. 주지훈은 “이창에게 핏줄은 콤플렉스나 자격지심을 넘어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라면서 “이창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이라고 봤다. 이창이 세자의 자리를 스스로 버린 것은 권력욕에 정복당하지 않겠다는 실천인 동시에 혈통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이기도 하다. 주지훈은 왕권을 내려놓기로 한 이창의 선택을 “이야기의 본질을 잃지 않은 장면”이라고 봤다. 시청자에게도 “액션이 주는 쾌감 너머 이야기의 본질을 봐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주로 SNS에서 봐요.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특히 재밌거든요. ‘1년동안 시즌 2를 기다렸는데, 반나절 만에 정주행했다. 앞으로 1년을 또 어떻게 기다리냐’, ‘넷플릭스, 이놈들아 시즌 3 당장 내놔라’ 같은 반응들. 아! 그리고 이것도 기억에 남네요. ‘인생은 범팔(전석호)이처럼.’ 하하하. 시즌 3가 나온다면 두어 달 전부턴 체력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다. 시즌 3에선 전략적으로 싸우지 않을까요? 그럼 몸 쓰는 건 좀 더 편해지려나….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주지훈은 요즘 여러모로 가장 뜨거운 배우다. 온라인 세상에선 ‘킹덤2’로 세계 팬들을 통합하고, 안방극장에선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로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에게 인기 비결이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 “촬영 현장에서 말을 잘 듣는다. 게다가 같은 값(출연료)에도 회의에 참여하는 등 ‘잔잔바리’로 일을 더 많이 한다”는 농 섞인 답이 돌아왔다. 다시, 영화·방송 관계자가 아닌 시청자와 관객이 주지훈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무엇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요즘 그런 말을 자주 해주시더라고요. 까칠하게 생겼는데 나름 귀엽다고. 저도 어디서 본 말이에요.(웃음)”
20대의 주지훈은 ‘느와르’를 동경했고 30대의 주지훈은 그 꿈을 이뤄냈다. 내년 불혹을 앞두고 있는 그의 요즘 관심사는 “하루하루를 아주 아주 아주 잘 사는 것”이다. “‘잘’이라는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긴 한데, 가령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엔 ‘집에서 차를 마시며 날씨를 관찰할까. 아니면 나가서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최근 ‘하이에나’ 촬영을 마친 그는 영화 ‘피랍’(감독 김성훈) 크랭크인 전까지 잠깐의 휴식을 얻었다. 쉬는 동안 먹는 데 맛이 들려서 요즘엔 “어떻게 하면 많이 먹고 살이 안 찔까”하는 고민에 빠져 있단다.
“주지훈이라는 배우는 사실 자격지심도 많고 겁도 많아요. 결국 자신감은 좋은 작가님과 감독님, 좋은 동료들을 만났을 때 생기는 것 같아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랄까요. 든든한데, 그만큼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하죠. 해외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영어 대사, 괜찮겠느냐고요? ‘노 프라블럼’입니다. 저흰 입금되면 다 하는 존재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wild37@kukinews.com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