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진 (문학평론가, 전북대 명예교수)
◆ 오늘 새벽 빗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어제 해거름에 집 안팎을 돌면서 단단히 비설거지를 하였으므로, 그저 낙숫물 소리나 들으며 새벽잠을 즐기자는 속셈으로 다시 잠을 청하였다. ‘봄비는 잠 비 가을비는 떡 비’란 속담도 있지 않는가? 하면서……. 그러나 오랜만에 귓속을 간질이는 빗소리에 잠은 더욱 멀어지고, 이왕에 오는 비이니 넉넉히 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아 창문을 여니 섬돌에 빗물이 튀길 정도로 처마에서 낙숫물이 제법 주르륵 흘러내려 이렇게 두어 시간만 내리면 봄 해갈은 충분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비는 점점 약해지더니 정오 이전에 그쳤다. 방미산(尨尾山) 중턱까지 내려왔던 비구름도 점심 참이 가까워지자 산등성을 넘어가버렸다.1)
1)방미산(尨尾山) : 전북 임실군 관촌면에 소재하며 해발 572m임. 동(東)으로 좀 가까이에 팔공산·덕태산·선각산·성수산(이상 전북 장수와 진안군 사이의 1100m 내외의 봉우리) 등의 호남금남정맥과 선 닿아 있으며. 좀 멀리로는 장안산(전북 장수 소재, 1237m)과 백운산(전북 장수 소재, 1279m), 그리고 덕유산(전북 무주·장수군과 경남 거창·함양군 경계 소재, 주봉은 1614m인 향적봉과 1507m인 남덕유산) 등의 백두대간으로 이어짐. 북(北)으로는 전북 진안군 성수면을 관통하는 제룡강과. 서(西)로는 전북 임실군 관촌·신평면을 관통하는 오원강(이상 두 강은 이 지역 섬진강 상류를 따로 일컫는 고유명사)을 굽어보고 있음. 필자는 방미산 정상에서 오원강으로 흘러내리는 산기슭의 한 언저리에서 살고 있음.
좀 아쉬운 마음에 텃밭에 나가 지난 달 하순에 심은 감자밭 한 귀퉁이를 호미로 파보았다. 이제 막 돋기 시작하는 감자 순 아래 두 세치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말 그대로 ‘우로기유(雨露旣濡)’가 된 셈이다. 이 정도면 흡족하지는 않지만, 우선 당장 봄 가뭄은 면할 것 같다는 심산이다.
텃밭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마늘‧부추 잎이 하룻밤 사이에 한 치는 더 자란 듯 같고, 상추‧아욱‧쑥갓 새싹이 더욱 푸르다. 방미산 기슭의 연두빛 파스텔 톤의 나뭇잎 색깔도 하루 사이에 중턱까지 차 올랐다. 오늘 아침 비구름이 하방(下方)했던 5부 능선까지 ‘새순 군단(軍團)’이 진격했으니, 그 중턱에서 밤 사이에 비구름과 새순 사이에 모종의 협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그 양자 사이에 어떠한 꿍꿍이가 있었다면 어제 양춘(陽春)의 볕을 받아 그 근처에 게릴라처럼 피어난 산벚꽃은 그 속내를 엿들었을 텐데……. 더구나 사방에서 시시때때로 불어오며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려 그 엿들은 속내는 얼마나 재재거리며 어디까지 번져갔을까…….
◆ 이번 비는 요즘 심거나 자라는 농작물에 참으로 귀중한 단비라 할만하다. 아니 보약 같은 ‘약비’라고 하는 게 옳겠다. 사흘 후가 곡우(穀雨) 절기인데, 그렇다면 곡식처럼 소중한 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요즘 절기를 왜 곡우로 이름 붙였을까’ 하는 좀 생뚱맞은 생각을 해보았다. “곡식하면 쌀·콩·조·수수 등 가을에 거두는 낱알들이 주류인데, 이 봄철 아직 그 파종도 이른 시기에 ‘곡(穀)’ 자가 어울리기나 한가?” 하면서……. 오히려 “요즘 철에는 곡식보다는 새싹이나 이슬이나 봄꽃이나 바람 같은 말들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녹우(綠雨)’ · ‘우로(雨露)’ · ‘화우(花雨)’ · ‘우풍(雨風)’ 같은 표현도 괜찮을 텐데” 하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봄비가 잘 내려야 가을 곡식 농사를 잘 준비할 수 있을 터여서 그리 이름 붙였나 하는 생각도 함께 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금방 깨달았다. ‘여름에 수확하는 보리·밀 같은 낱알도 곡식인 것은 분명하고, 또 그 곡식이 잘 여물려면 지금쯤 비가 와야 할 터인데…….’ 하는 자각을 하면서다. 그래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쌀·콩 등은 추곡(秋穀)’이라 하고 보리·밀 등은 ‘하곡(夏穀)’이라 하여 대등하게 부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곡우’란 절기 명은 보리·밀 등의 생육을 고려하여, 이때쯤 오는 비로 하곡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말일 수도 있겠다 싶다. 더 깊게 생각하면 인류의 탄수화물 먹거리로서 쌀보다 밀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곡우’란 말 속에 하곡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이나 남북 아메리카나 대부분의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등의 밀을 주식으로 하는 그 수많은 나라 사람들은 요즘을 ‘곡우’로 칭하는 것에 박수를 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 이 곡우(穀雨) 절기에 식량 문제가 입줄에 오르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자 베트남·캄보디아 등에서 미곡 반출을 닫았으며, 러시아 등에서는 곡물·채소 수출을 중단했다는 뉴스가 올랐다. 아직은 세계적으로 식량 비축분에 약간의 여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식량자급률이 50%에 밑도는 한국의 국민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임에 분명하다.
만약에 코로나 사태가 더욱 악화되어 곡물 수입이 차단된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될까? 곡물가의 폭등은 명약관화하고, 그 폭등으로 말미암아 예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우리의 일차원적 활동에 적잖은 변화가 초래될 것이다. 사태가 더욱 악화되면 국민 상당수가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란 말이다. 해서 식량 자급을 위해 묻어두었던 과거사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우선 당장 휴경지를 다시 일구고, 올가을부터라도 우선적으로 하곡을 파종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60년대식 개간 사업을 재개해야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전 지구적인 코로나 사태가 올 여름이 오기 전에 해결되어야 한다. 참으로 그렇게 되기를 희구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팬더믹’으로 규정했다. 전 지구적인 유행이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좀 살펴보면, 강대국의 경우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미국·영국·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러시아 등……. 여기에 이란까지 보태면 어떤 공약수가 생겨난다. 즉 과거나 현재 어느 한 시기에 세계를 주름 잡았던/잡고 있는 ‘제국’이었다는/‘제국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지금도 선진국으로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이 점은 동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금세 확인된다.)
◆ 세계 도처에서 식민지를 경영했던/경영하는 제국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유달리 취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의 단견으로는 그 제국들 국민 속 심리 속에 잠재해 있는 독선(獨善)이라고 본다. 자국의 문화와 정체성만을 절대화하고 타국의 그것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독선이 그들 무의식 저변에 자리잡고 있고, 그것이 이번의 코로나 사태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표면화되었다고 본다.
과거 제국의 ‘식민자’들은 점령국·식민국의 ‘피식민자’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였다. 거기에는 그들의 이념·교리가 독선(獨善)으로 작용하였다. 그 독선은 수탈과 착취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살해를 정당화하기도 하였다. 그런 행위들이 수십 년, 아니 수 세기 길게는 천년 넘게 이어지면서 집단적 무의식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터. 이런 집단무의식은 자국인·자민족 외에는 타자(他者)로 얕잡아보도록 작동한다.
이런 배타·비하 의식이 심리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데, 한낮 미물인 바이러스에 대해서랴? 중국의 대처 방식을 두고 사회주의적 봉쇄라고 비웃고, 한국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며 비난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매우 우아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에 빠져 있다가 결국 일을 키운 꼴이 된 셈이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적 독선은 이내 편견과 오만을 낳고, 이런 편견·오만이 결국 그들 나라에 코로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단서가 되었을 것.
◆ 그 ‘제국’들이 늦게나마 오만한 자세를 청산하고 겸손하게 코로나에 대처하게 된 것은 그나마 위안이다.
이 곡우 절기가 온 세계 코로나 사태의 변곡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중국·러시아·미국·우크라이나·아르헨티나·인도 등의 대평원에서 밀농사가 풍작으로 이어지고 우리가 그 밀알을 맘 놓고 사 먹는 날이 도래하기를 또한 기대한다. (2020.04.17.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