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와 스페인 독감 – 역사는 반복된다
#글// 김기주 선한빛요양병원 원장(신경과 전문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현재, 이 병은 지난 100년간 인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감염병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29일 현재 총 감염자 수가 26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도 20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아직 최종 수치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더욱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가에서 외출금지 또는 제한, 사재기, 입출국 제한 등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전 세계적인 수요∙공급망의 동시 붕괴, 유가폭락, 일자리 감소 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미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러한 양상은 20세기 대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을 연상시킨다.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 19와의 비교는 언론에서 몇차례 다루어진 바 있다. 두 감염병의 전파능력, 억제능력 및 인류의 대처 등에서 차이와 유사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유의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스페인 독감은 조류 독감의 일종(influenza type A, H1N1)으로, 오늘날 독감의 주요 원인 바이러스 중 하나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종식 시점에 시작하여 1920년까지 유행했으며, 당시 16억 인구 중 5억명이 감염되었고, 5천만명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략 사망률 10%로, 전 인류의 3%가량이 이 병으로 사망한 셈이다. 이는 당시 1차 세계대전 사망자수 1,500만명 또는 한반도 인구 1,678만명(1919년 기준)과 비교해보면 그 엄청난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의 최초 발생 지역에 대해 중국, 미국, 영국 등 아직 의견이 분분하나, 첫 환자 보고는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 미군부대에서 보고되었다. 이후 세계 각국에 참전한 미군부대의 이동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언론 통제가 심했던 참전국들에서는 이에 대한 초기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통계도 축소됐으며 방역 대책도 늦어지게 되었다. 당시 중립국이던 스페인에서 이 감염병에 대한 보도가 많이 이루어졌고, 당시 스페인 국왕이던 알폰소 13세가 감염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최근 중국 일부 언론에서 코로나 19에 대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국외 다른 지역 이름을 붙여서 명명하려는 시도가 전혀 근거가 없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3차례에 걸쳐 스페인 독감 파동이 있었고 그 첫번째 파동은 1918년 초로, 인구 천명당 5명가량 사망했다. 그러나 1918년 후반에 바이러스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 2차 파동 때는 인구 천명당 25명가량의 사망자를 보이며 총 2천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이어 1919년 초 3차 파동에서는 천명당 10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후 대유행은 점차 수그러들게 됐다.
당시 스페인 독감의 재생산율(reproduction rate)은 1.2-3.0으로 연구결과가 나온 반면, 코로나 19의 재생산율은 WHO 발표에서는 1.98, 최근 평가논문(review article)에서는 2.79가량으로 발표되었다. (재생산율이 높을수록 높은 전파력을 지니며 해당 수치는 지역사회기반 자료임)
스페인 독감 당시에는 당연히 현재와 같은 진단키트도 없었고,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1928년에야 발견됐으므로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도 없었다. 또한 열악하고 부족한 의료시설과 공공보건시설, 2019년과 비교하여 11% 정도의 소득수준(1인당 GDP, 1913년 1차 세계대전 발생 전 기준) 등을 감안하면 현시점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시절이다. 당시 취할 수 있는 대처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동제한, 현재보다 더욱 제한된 보존치료 외에는 마땅치 않았다. 반면 현재 인류는 진단키트를 통한 조기 진단, 앞선 의료장비와 과학기술 및 진보된 국가적인 방역시스템, 비접촉시스템의 구축 등으로 이전보다 훨씬 유리한 상태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 불리한 점도 있는데, 그것은 극심한 세계화 및 더 높아진 인구밀도로 인해 지역내 및 세계적 확산 속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특히나 개발도상국 상황을 보면 유리하지 않아 보인다. 진단키트 및 각종 의료인프라 및 의료접근성의 부족, 낮은 소득수준으로 인한 락다운(Lockdown) 및 사회적 거리두기 유지에 대한 어려움, 이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책 미비 등으로 인하여 선진국에 비해 더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어쩌면 상당수 국가들이 집단면역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즉 더욱 많은 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더 높은 확률로 위험한 변이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선진국가 상황도 그리 녹록치 않다. 정부와 언론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부족하여 코로나 19의 확산 및 피해가 가중되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있다.
과거 스페인 독감의 경험을 통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바로 유전자 변이에 의한 더 강력한 바이러스로 인한 2차 파동(second wave)의 가능성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페인 독감 피해도 2차 파동 때 더욱 컸으며 그 시기도 1919년 후반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나 언제 다시 국내 클러스터 발생 및 외국에서의 변이에 의한 코로나 19의 전파를 경험할지 모른다.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 생활화를 포함하여 사회적 거리두기 및 의심증상 발생시 조기검사 및 자가격리를 게을리하면 안될 것이다.
과거 스페인 독감 대유행은 세계 경기를 악화시켰고 그 여파로 공산주의 사상이 세계적으로 퍼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기면뇌염(encephalitis lethargica)이라는 병도 많이 발생했는데, 일부 연구에서는 스페인 독감을 그 원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기면뇌염으로 약 50만명 이상 사망했으며 뇌염 후 파킨슨 증상, 안근마비, 반사회적 인격장애, 망상 등 정신행동 이상증상이 동반되기도 했다.
나치 독일 총통 히틀러도 이 병을 앓았고 이로 인해 파킨슨 증상, 안근마비 등의 증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연구들도 있다. 히틀러의 강박, 집착, 분노와 잔인함의 원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의 창궐과 2차 세계 대전 발발,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로 인한 홀로코스트 및 수많은 학살 사이에 연관성이 보인다. 또한 1919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건강이 악화돼, 1차 세계 대전 후의 베르사유 조약에서 제 역할을 못했다고 한다. 즉 전승국인 프랑스와 영국이 패전국 독일에 대해 과도한 배상금 요구를 하는 것을 막지 못해서 나치 독일이 형성되고, 결국 2차 세계 대전 발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 인류 역사의 방향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우리 예상대로 변화하는 점도 있겠지만 예상치 못한 변화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부정적인 변화를 줄이기 위해서는 코로나 19의 유행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경제적인 피해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코로나 대응공조를 공고히 함으로써 개발도상국을 포함하여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일이 시급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