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난 재즈가 싫어요.” 남자는 여자의 말에 아연실색한다. 그러더니 여자를 어느 재즈 클럽으로 데리고 가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 해요. 저 친구들 보세요. 저 색소폰 연주자요. 방금 곡을 가로채서 멋대로 가지고 놀아요. 다들 새로 작곡하고 편곡하고 쓰면서 선율까지 들려주죠. 이젠 또 트럼펫이 할 말이 있군요. 서로 충돌했다가 다시 타협하고 그냥…. 매번 새로워요. 매일 밤이 초연이에요. 진짜 기가 막혀요.” 영화 ‘라라랜드’ 속 장면이다.
흔히 재즈의 매력은 즉흥적인 변주에 있다고들 한다. 반면 K팝에선 쉽게 귀에 꽂히고 금방 따라 부를 수도 있는 훅이 중요시된다. 재즈와 K팝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운명일까.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인 이진아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재즈에 뿌리를 둔 그의 음악적 세계는 팝과 결합해 장르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부순다. 최근 쿠키뉴스와 서면 인터뷰로 만난 이진아는 “재즈를 다른 장르와 융합시킬 땐 ‘Expected’(예상되는 것)와 ‘Unexpected’(예상 밖의 것)의 적절한 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발매한 ‘캔디 피아니스트’ 역시 재즈풍 분위기에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만든 팝재즈 음반이다. 타이틀곡 ‘꿈같은 알람’을 포함해 6곡이 실렸으며, 앞서 ‘랜덤’(RANDOM) 음반을 함께 작업했던 프로듀서 사이먼 페트렌이 또 한 번 힘을 보탰다. 음반 제목은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이미지의 단어 ‘캔디’에 ‘피아니스트’를 붙여서 지었다. 이진아만의 감성이 담긴 새로운 장르의 연주와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이다. 반응은 좋다. 팬들 사이에선 ‘장르가 이진아’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를 가지고 여러 가지 기법을 넣어 팝으로 녹여낸 앨범입니다. 고민과 생각,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솔직하게 일기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제 음악을 들어주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음악을 통해 동기부여가 되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캔디 피아니스트’가 돼 아름다운 화음과 멜로디로 사람들을 깨우고 힘을 주고 싶습니다.”
타이틀곡 ‘꿈같은 알람’은 이진아표 ‘기상 노래’다. 경쾌한 피아노 연주 위로 솜사탕 같은 목소리가 내려앉는다. ‘맨투맨’ ‘다이어리’ 같은 평범한 물건들도 음악의 재료가 되는 마법이 벌어진다. 이진아는 “아기자기하면서도 풍성한 사운드들이 많이 들어있어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사진 애플리케이션의 순정만화 필터를 사용한 뮤직비디오도 독특하다. 소속사 안테나를 이끄는 유희열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유희열을 필두로 밴드 페퍼톤스 멤버 이장원, 가수 겸 피아니스트 정재형, 그룹 아스트로 차은우가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진아는 자신이 직접 곡을 쓰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다. 일상에서의 경험과 감정들이 그에겐 영감의 원천이 된다. 특히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란다. 이번 음반을 작업할 때도 산책을 많이 다녔다. 지난해 부부의 연을 맺은 피아니스트 신성진은 좋은 조력자가 되어줬다. 이진아는 “남편이 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피드백을 많이 해주고 가상악기나 미디 등의 방면에서는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고 했다.
“이번 음반에선 가장 저 다운 것들을 만드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평소에 피아노 치면서 혼자 노래 부를 때 나오는 멜로디와 가사들을 가져왔습니다. 아직 ‘이진아 표 음악’의 차별성을 꼽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가장 저 다운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여리고 달콤하지만 피아노 연주는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차분한 분위기의 ‘먼지’와 ‘어웨이크’(Awake)에선 섬세한 연주가 돋보인다. 이진아는 피아노와 재즈를 “큰 도화지와 크레파스”에 비유했다. 피아노와 재즈가 “다양하게 그리고 색칠도 할 수 있는 친구”라는 것이다. 이진아가 들려주는 그림에 베테랑 음악인들도 일찍부터 찬사를 보냈다. 4년 전 그가 SBS ‘K팝스타’ 시즌4에 출연했을 당시, 박진영과 유희열은 “전 세계적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 “내가 꿈꿔왔던 여성 뮤지션의 실체”라며 감탄했었다.
이진아는 “제 노래를 많은 분들이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하고 만족한다”고 했다. 그의 음악이 동화 같다는 기자의 말에는 “제가 직접 곡을 쓰다 보니 곡에 제 성향이 잘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연주를 좋아해서 그런 성향이 곡에 더 잘 나타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화처럼, 이진아 역시 자신의 음악이 용기와 위로를 주길 꿈꾼다.
“가치관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긴 하지만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위로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곡들을 들으며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싶고, 상상을 펼치면서 멋진 노래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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