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협의 회장 이대호는 판공비를 기존 24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인상하고 이를 개인계좌로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번졌다. 이에 대해 이대호는 기자회견에 나서 "당시 내가 회장이 될 줄 몰랐으며 판공비 인상은 이사회에서 논의한 끝에 결정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셀프인상 의혹과 함께 또 다른 문제 제기 중 하나였던, 판공비를 개인계좌로 받고 이에 대한 증빙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선 "관행이었고 문제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대호의 해명에도 비판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판공비의 현금 지급, KBO리그 선수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판공비를 증빙서류 없이 사용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오랜 시간 동안 이를 관행이라 생각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점은 더욱이 납득하기 어렵다.
이대호는 판공비 사용권한을 관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지난 2012년 1월 선수협은 ‘판공비는 반드시 카드로 결제하고, 증빙이 없는 판공비는 부인한다’는 규정을 만든 바 있다. 규정을 되돌리고 다시 현금으로 판공비를 받았다는 이대호의 주장에 쉬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곪아왔던 선수협의 문제점이 이제서야 터졌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선수협은 KBO의 모든 선수들을 대변하고 권익을 보호하며 복지증진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지만, 최근에는 이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귀족 노조’라 불리기 시작했다. 팬들에게는 저연봉 선수들의 권익을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고액 연봉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라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선수협은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총액 상한제’를 막기 위해 ‘최저 연봉 인상’, ‘FA 등급제 도입’ 안을 거부했다. 오히려 KBO와 10개 구단에 ‘고액 연봉 선수 감액’ 규약 폐지를 추가로 요구했다.
반면 KBO가 제시한 최저연봉 인상에 대해선 처음에는 입을 꾹 닫았다. 최저 선수 연봉이 2700만원에서 300만원 늘어나는 데 5년이나 걸렸지만, 지금의 선수협은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례’라고 말하는 선수협의 안일함과 무책임으로 보호 받아야 할 선수를 위해 쓰여야 하는 돈은 선수들이 아닌 누군가의 주머니로 흘러나갔다.
1990년대 故 최동원을 비롯한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돕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쳐 선수협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최동원은 부당 트레이드를 당하기도 했다. 끝내 2000년 송진우가 회장을 맡으면서 간신히 선수협은 출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당시의 희생과 헌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맡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힘이 없다"는 이대호의 볼멘소리가 선수협의 현주소다.
회장직도 더는 선수 전체를 대변하는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다. 떠맡기 싫은 귀찮은 자리일 뿐이다. 선수 생활도 해야하는 데 신경쓸 부분이 너무나 많다. 선수협 회장직을 이대호가 맡기 전, 2017년 이호준(전 NC 코치)가 물러난 뒤 2년간 공석이기도 했다. 이대호도 사실상 등 떠밀려 맡은 자리였다.
이대호는 다음해 3월로 임기를 마친다. 조만간 이사회를 통해 새 회장을 뽑을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회장을 맡을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직도 선수협이 풀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키를 잡을 선장이 없다.
프로야구 선수의 권익향상과 약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선수협이지만, 고연봉자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이제는 선수들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정작 회비를 내는 선수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선수협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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