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지난해 9월부터 방송돼 올해 4월 종영한 tvN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는 각 방송사에서 매번 시도했으나 실패한 ‘책’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예능이었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책에서 재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방송인 전현무와 이적 등 예능에서 익숙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 출연했습니다. 매주 5~6명의 패널과 책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가 출연해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간단한 형식의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출연자는 인기 강사 출신으로 각종 방송에 출연 중이던 설민석이었습니다.
‘요즘책방’에서 패널석에 앉아 있던 설민석은 ‘책 읽어주는 남자’의 역할로 때가 되면 앞으로 나가 칠판 앞에 섰습니다. 매주 선정되는 책을 읽지 않은 시청자들을 위해 어떤 책인지 재미있게 알맹이만 설명해주는 역할이었죠. 책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가 출연해도 강의는 설민석이 맡았습니다. 덕분에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매회 안정적으로 비슷한 정도의 재미를 단시간에 전달해줬죠. ‘징비록’ 편의 강의를 요약한 ‘설민석 강독 풀버전★ 임진왜란, 참혹했던 조선! 통한의 기록’은 유튜브에서 50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 보던 프로그램을 하차한 건 ‘삼국지’ 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삼국지의 방대한 이야기를 요약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했습니다. 시청자들이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삼국지’를 그 주의 책으로 선정해 2주에 걸쳐 방송한 21~22회는 3.5%(닐슨코리아 제공)로 시즌 전체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죠. 설민석은 그의 방식대로 자신감 있게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극중 인물에게 캐릭터를 주고 기존의 통념을 깨는 이야기, 잘 몰랐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줬습니다. 청중과 함께 대화하고 자신의 연기력을 통해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그의 강점이 잘 드러났죠.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삼국지 전체를 가늠하는 건 어려웠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30분 정도의 시간에 임팩트와 재미를 겸한 강의는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어딘가 빈곤한 인상이었습니다. 책에 관한 강의라기보다는 방송에 최적화된 모습이었죠. 예능 프로그램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는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의 몫을 다하는 프로페셔널하고 유능한 방송인이 분명합니다. 다만 점점 본업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느껴졌을 뿐이죠.
설민석은 지난 29일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 논란 직후 자신의 SNS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고 선언했죠. 이미 지난주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잘못된 사실을 전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사과문을 한 차례 올린 바 있습니다. 여러 논란으로 쌓였던 강사 개인의 신뢰도 하락이 논문 표절을 계기로 한계치를 넘은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사건을 다른 측면으로도 들여다 볼 여지가 있습니다. 설민석 이전에도 인기 강사 최진기가 2016년 tvN ‘어쩌다 어른’에서 강의를 하다가 하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역시 사회학이 전공이었지만 엉뚱하게도 미술사 강의를 진행했고 강의 도중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죠. 설민석 역시 세계사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세계사 강의 프로그램에서 오류를 드러냈습니다. 이번 일이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같은 일이 반복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설민석 이후 제2의 설민석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송에서 강의 콘텐츠는 매력적이고 검증된 장르인 만큼, 설민석이 없어도 새롭게 시청률을 높여줄 강사를 찾아낼 이유는 충분하겠죠. 이번 일을 설민석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찜찜한 이유입니다. 과연 설민석이 그 바쁜 일정 속에서 삼국지를 짧은 시간에 요약하면서도 재미있는 강의를 하겠다고 자원했을까요. 최진기는 정말 자신 있어서 미술사 강의를 맡은 걸까요. 출연자에게도 당연히 강의를 맡아서 진행한 책임이 있고, 그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방송을 떠났습니다. 방송국은 그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하겠죠. 이걸로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