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을 소재로 한 농담, 일명 ‘섹드립’은 주로 남성의 입을 통하곤 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남성 연예인 여럿은 ‘신’(神)이나 ‘감성변태’, 혹은 ‘음란마귀’ 같은 별명과 함께 환호 받았습니다. 여성 연예인들이 이 영역에 발을 들인 건 최근의 일입니다. 여성의 성적 표현에 보수적이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죠. 방송인 박나래는 ‘섹스 코미디’를 선보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코미디언 중 한 명입니다. 그가 2019년 공연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전국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갔을 만큼 인기였습니다.
웹 예능 ‘헤이나래’는 박나래의 이런 ‘19금 개그’에서 기인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아동 콘텐츠를 제작하는 헤이지니와 성인 개그에 일가견 있는 박나래의 다름이 이 프로그램의 관전 포인트였던 겁니다. 그런데 박나래가 ‘헤이나래’에서 남성 인형의 팔을 사타구니 쪽으로 끌어당기는 장난을 쳤다가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유통 혐의로 경찰에 고발을 당했습니다. 박나래는 사과했고, ‘헤이나래’는 폐지됐습니다.
이런 사태의 배경에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결집한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허버허버’ ‘오조오억’ 같은 신조어가 ‘페미니스트가 많은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인다’는 이유로 이를 ‘남혐 용어’로 규정하고, 시작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흔하게 쓰이던 손가락 집게 포즈가 이미 사라진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를 상징한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즘을 배격합니다. ‘미투’ 운동 이후 남성이 가해자인 성폭력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여성도 성폭력 가해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헤이나래’가 도마 위에 오른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인 ‘이루다’를 향한 유저들의 잇단 성적 괴롭힘으로 서비스가 중단되고, 여성의 신체를 본 뜬 ‘리얼돌’ 성인용품이 여성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써 ‘헤이나래’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여기에 가부장제에서 비롯한 ‘여성혐오’와 다크웹, n번방 사건 등으로 드러난 ‘강간문화’에 관한 성찰은 없습니다.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제하지 말라’는 요구에 ‘여성도 성폭력 가해자다’라고 답한다면, 그 논의는 과연 ‘성 평등’이나 ‘성폭력 근절’을 향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겐 박나래의 ‘19금 개그’가 민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섹드립 신’ ‘감성변태’ ‘음란마귀’로 포장된 남성 연예인의 발언들이 때로 불편하고 자주 불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박나래를 끌어내리는 저의가 여성을 공격하고 페미니즘을 무력화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틀린 시도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반격이 아니라 올바른 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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