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싱크홀’, 편히 웃을 수가 없다

[쿡리뷰] ‘싱크홀’, 편히 웃을 수가 없다

기사승인 2021-08-11 05:30:02
영화 ‘싱크홀’ 스틸. 쇼박스 제공.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서울로 올라온 지 11년 만에 집을 샀다. 직장 가까이에 있는 신축 빌라다. 직장 동료들을 초대해 축하 파티를 벌인 다음날, 비극이 벌어진다. 땅이 무너져 빌라 한 동이 지하 500m 싱크홀에 처박힌다.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은 욕망의 대상이 된 ‘집’을 재난지역으로 설정하며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재난 영화’라는 그릇에 코미디를 메인 소스로 가족드라마와 스펙터클을 곁들여 비볐다. 그런데 이 영화,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다.

주인공은 평범한 회사원 동원(김성균). 새로 입주한 빌라에서 ‘내 집 마련’의 달콤함을 만끽하던 그는 거실 바닥이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염려한다. 입주자들을 모아 대책 회의를 열어봐도 ‘소문나면 집값 떨어진다’는 말 뿐,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재난이 벌어진다. 집에 있던 동원(김성균)과 그의 직장 동료 김 대리(이광수)와 은주(김혜준), 이웃주민 만수(차승원)·승태(남다름) 부자는 순식간에 땅 속에 고립된다.

‘싱크홀’ 스틸. 쇼박스 제공.
‘싱크홀’은 ‘해운대’ 등 한국형 재난영화에서 흔한 ‘선 코믹, 후 감동’ 법칙을 따른다. ‘괴짜 아저씨’ 만수를 필두로 어설픈 듯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들이 전반부 코믹을 담당한다. 재난상황이 악화되는 후반부에선 부성애를 동력 삼아 감동 서사가 이어진다. 볼거리도 확실하다. 빌라가 추락하는 장면에선 컴퓨터그래픽(CG)의 정교함이 다소 떨어지지만, 대규모 암벽 세트와 수조 세트 등이 재난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짐벌(회전 허용 장치) 세트를 활용한 덕에 배우들의 표정·액션 연기도 생생하다.

다만 쉽게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다. 빌라 안에 고립된 또 다른 희생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엉뚱한 행동에 웃으려면 싱크홀에 빠진 다른 주민들(공교롭게도 이들 대부분 신체적 약자다)을 잊거나 무시해야 하는데, 어느 쪽도 쉽지 않다. 재난 희생자들을 직접적·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던 영화 ‘엑시트’를 떠올리면, ‘싱크홀’의 허점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도 있으나, 눈물을 흘리기도 께름칙하다. 극한 상황으로 약자를 몰아넣어 흘리게 하는 눈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다.

극 중 등장인물이 재결합하는 에필로그는 호불호가 갈릴 전망이다. “인간적이고 희망을 찾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는 김 감독의 포부가 엿보이지만, 갑자기 순진무구해진 영화 속 세상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집값 상승과 삼포세대 등 사회적 이슈를 건드렸던 전반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재난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너무 가볍게 다뤘다는 인상도 짙다. 11일 개봉. 12세 관람가.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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