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수원 KT전을 앞두고 사전 인터뷰에 나선 전창진 KCC 감독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평소 웃음이 만연한 얼굴로 기자들과 말을 주고받던 인물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감독을 오래 하면서 지금처럼 힘들어 본 적은 처음”이라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욕심이 생겨서 주전들을 끝까지 기용하는데, 결국 체력만 다 쓰고 패배만 했다. 감독이 욕심을 내서 선수들이 힘들어한다. 선수들이 군말 없이 따라오고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멀리 보지 못한 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인 KCC는 올 시즌 개막전 유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받았다. 전력 누수가 거의 없었고, 지도력이 뛰어난 전 감독의 지휘하에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KCC는 현재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 MVP인 송교창이 개막 후 6경기 만에 손가락 골절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돌아오지 못했다. 김지완, 전준범, 박재현, 정창영 등이 번갈아 가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주전 포인트가드로 성장한 유현준은 이유 모를 슬럼프로 헤매고 있다.
주전 및 핵심 식스맨 선수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남아 있는 선수들이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KCC는 벤치 뎁스마저 다른 팀에 비해 얇아 주축 선수들이 많은 시간을 소화하고 있다. 일부 선수들이 지친 상태로 계속 경기를 치르다 보니 접전까지 경기를 끌고 가도 이기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KCC의 암울한 상황은 숫자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12일 기준 평균 86.5점을 실점하며 10개 구단 중 최다 실점팀에 올라있다. 지난 시즌(77.4점)에 최저실점을 기록했던 팀이 반 년 만에 전혀 다른 팀이 됐다. 팀 리바운드도 평균 35.6개로 최하위다.
선수단 분위기마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계속된 연패에 선수들도 의욕이 크게 꺾인 모습이다.
지난 11일 치른 원주 DB전의 이정현이 대표적이었다. 2쿼터에 들어선 그는 나오자마자 시도한 3점슛이 에어볼이 됐고, 이후 박찬희에게 어이없는 파울을 범하며 정창영과 교체돼 벤치로 물러났다. 약 7분을 소화한 그는 더 이상 코트를 밟지 못했다.
주축 선수가 부진한 KCC는 결국 DB에 74대 82로 패배하며 10연패 수렁에 빠졌다. 이는 팀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이다. KCC는 2007~2008시즌과 2015~2016시즌에 10연패를 기록한 바 있다. 전 감독도 이번 연패로 개인 최다 연패 기록(2014~2015시즌 8연패)을 갈아치웠다.
경기 후 전 감독은 “팀이 연패 중인데 경기할 준비가 전혀 안됐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의 자세가 아니었다. 말할 가치가 없다”고 이정현을 공개 비판했다.
다행히 KCC에겐 숨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오는 13일부터 KBL은 올스타전 휴식기에 돌입한다. KCC는 약 일주일간의 휴식을 가진 뒤 오는 19일에 고양 오리온을 상대한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에 좋은 시기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