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배우들이 드라마, 영화를 넘어 예능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이른바 ‘할매니얼’ 시대(할매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다. 노년 배우들의 연륜과 솔직함이 MZ 세대 감성과 맞물려 호응을 얻는 모습이다.
도드라지는 건 배우 김영옥과 나문희의 행보다. 이들은 채널S ‘진격의 할매’와 JTBC ‘뜨거운 씽어즈’에서 입담과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며 맹활약 중이다. ‘국민 할머니’이자 각자 ‘욕쟁이 할매’, ‘호구마(호박고구마) 할머니’ 등 독자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던 것과는 또 다른 행보다. ‘진격의 할매’는 김영옥, 나문희, 박정수가 진행을 맡아 인생 후배들의 고민을 듣고 저마다의 생각이 담긴 조언을 건네는 프로그램이다. 전문 예능인이 아닌 만큼 이들이 하는 말은 여타 예능과 다르다. 직설적이면서도 진심이 담긴, 날것 그대로의 조언이다. 우리네 할머니들을 보는 듯한 친근함과 진정성 가득한 모습은 때때로 웃음과 감동을 준다.
JTBC ‘뜨거운 씽어즈’에서의 활약도 돋보인다. ‘뜨거운 씽어즈’는 중장년 배우들이 주축을 이룬 ‘시니어벤져스’가 합창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김영옥, 나문희를 중심으로 우현, 이병준, 서이숙, 윤유선, 김광규, 최대철 등이 출연해 서로 호흡을 맞춘다.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이들의 노래는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나문희가 부른 ‘나의 옛날 이야기’(원곡 조덕배)는 선 공개 버전으로만 유튜브 조회수 37만을 기록했다(28일 기준). 개별 클립 조회수 29만뷰, 9만뷰까지 합산하면 74만회나 재생된 셈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김영옥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 가창 영상은 도합 139만뷰를 기록했다. 네티즌들은 해당 영상들에 “인생이 담긴 노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가수와는 또 다른 표현력이 있다” 등 호평을 남겼다. 시청률은 4%대를 유지 중이다(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
박원숙이 연예계 동료인 혜은이, 김영란, 김청과 여가시간을 함께하는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시즌3까지 이어지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시청률도 5~7%대를 오가는 등 안정적이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들은 과거 일화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모종을 심거나 카레이싱에 도전하는 등 다양한 시간을 함께한다. 이들이 풀어내는 과거 이야기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인생을 돌아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와 힘을 얻는 이들의 모습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방송가는 왜 시니어 배우들에 주목할까. 한 방송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공감, 재미, 감동 삼박자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MZ세대에겐 엄마이자 할머니로, 중장년층 시청자에겐 또래들로 비치며 공감할 여지를 준다”면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건넨다. 이 지점에서 세대 간의 벽이 허물어져 전 연령층에 어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니어 배우가 가진 개성의 힘이 통했다는 의견도 있다. 기존의 예능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이들의 언변과 사고방식은 보다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니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솔직함이 있다. SBS ‘미운우리새끼’의 ‘모(母)벤져스’나 유튜버 박막례 등 좋은 선례들이 있지 않나”면서 “할매니얼의 바람이 TV로 온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