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도 집을 짓는데…” 공사 중단된 둔촌주공

“까치도 집을 짓는데…” 공사 중단된 둔촌주공

[르포] 공사 중단된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돌아보니

기사승인 2022-04-15 05:00:02

-조합·시공사 공사비 충돌
-국내 최대 재건축 현장, 초유의 공사중단
-시공단, 현장서 철수하고 유치권 행사
-조합, ‘계약해지’로 맞불
-1만2000가구 분양일정 차질 불가피
-전세난민, 6천여 조합원 한숨 깊어져
14일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현장에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붙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공사 중단 소식에 이미 많이 빠져나갔어요. 최근 10여 일 동안은 국내 노동자들은 물론 공사장비들도 많이 빠져 나간 상태”라며 “오후 들어서 대부분 공사현장에서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짐을 챙겨서 나가기 시작했다.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도 모르고 한마디로 한숨만 나온다”며 14일 오후 국내최대 재건축 사업장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타워크레인도 하루 임대료가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벌써 멈춘 지가 며칠은 된 것 같다. 공사라는게 작업 시기에 맞춰서 해야하는데 이렇게 아무대책 없이 공사가 중단되면 조합원이나 시공사, 근로자, 일반분양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에게 너무 큰 피해가 가는게 아니냐”면서 하루 속히 공사가 재개되기를 희망하다고 밝혔다.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사업장에서 임대 사용 중이던 건축자재들이 대형트럭에 실려 현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장의 공사가 15일 중단된다.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시작된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의 갈등이 심해져 시공사업단이 현장에서 철수한다. 공정률이 50%를 넘은 대단지 아파트의 재건축 공사가 중단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으로 꼽히는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둔촌주공아파트를 지상 최고 35층, 1만2032가구 규모의 ‘올림픽파크 포레온’으로 신축하는 사업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현장인 둔촌주공아파트 사업장 전경/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불리는 둔촌주공이 공정률 50% 이상 진행된 가운데 공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둔촌주공재건축 유치권 행사 중. 무단출입, 기물파손, 게시물 훼손 시 관련법 의거 처벌될 수 있습니다.” 기자가 재건축 현장을 방문한 14일 오후 시공사 측이 ‘유치권 행사 중’ 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곳곳에 붙이고 있었다.
15일 0시부터 공사 중단 예정인 둔촌주공 사업장에는 14일 오후 근로자와 사업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자재를 가득 실은 차량들이 수없이 건축현장을 드나들고 빨간 헬멧을 쓴 경비원이 현장 초입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지만 공사중단을 앞둔 이날 출입문에는 경비원조차 보이지않고 취재를 막는 현장직원도 없었다. 오히려 일부 근로자들은 취재 중인 기자에게 다가와 기사를 좀 잘 써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며 부탁을 한다. 이 곳 현장에서 자재관리를 맏고 있었다는 한 근로자는 “그동안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서 척척 일을 해왔다. 아마 공사가 재개되더라도 다시 사람들을 모아서 손발을 맞추고 빠져나간 공사장비와 자재를 들여와 정상적으로 공사가 되려면 최소한 한두 달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오후 한 근로자가 짐을 모두 꾸려 자신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14일 현재 사업단과 조합 측은 모두 한치의 양보도 없다. 사업단은 조합 측에 통보한 대로 15일 0시부터 공사 현장에서 인력과 장비·자재 등을 철수시킬 예정이다. 사업단 측은 “현재 공정률이 52%인데도 지금껏 공사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며 “이미 변경된 계약으로 공사하고 있는데 조합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니 공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에는 14일 '공사중단' 현수막에서 '유치권 행사중'이라는 현수막으로 대부분 교체되고 있었다.

조합의 입장 역시 강경하다. “10일 이상 공사가 중단되면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나섰다. 둔촌주공재건축조합은 13일 대의원회를 열고 ‘시공사업단 조건부 계약해지 안건 총회 상정안’을 가결했다. 대의원 120명 가운데 116명이 참석해 111명이 찬성하면서 원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시공사업단의 공사 중단 통보에 따른 것이다.

이런 극한 대립의 배경에는 2020년 6월 양측이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에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2016년 당초 공사비 2조6000억원 규모로 계약됐다. 이후 2020년 기존 1만1106가구였던 가구 수가 1만2032가구로 늘어나면서 공사비를 3조2000억원으로 약 5600억원 증액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둔촌주공 사업장에서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한 근로자는 "내일 아침이면 나도 이 작업현장을 떠나야한다"면서 "다른 젊은 노동자들과 달리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은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후 집행부가 교체된 현 조합은 이전 조합과 체결한 5600억원의 공사비 증액 계약이 한국부동산원의 감정 결과를 반영한 총회를 거치지 않았고, 당시 조합장이 해임된 당일에 증액 계약이 맺어져 적법하지 않은 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당시 계약이 조합 총회 의결을 통해 맺어졌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았으니 문제없다고 반발한다.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건축현장에 타워크레인 역시 멈춰섰다.

국내 최대 규모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2015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2017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아 2019년 12월 착공했다. 현재 공정률 52%가량 달성한 상태지만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시공사업단과 조합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당초 5월 예정이던 4786가구에 달하는 일반분양은 연내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공사가 늦춰지면서 내년 8월로 예정했던 입주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시공사업단에 따르면 지금껏 자체 조달해 투입한 공사비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강동구청도 수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무산됐다. 
둔촌조합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실제 공사 중단 시 대책을 고민해 왔다. 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의사를 물어 계약 해지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실제 공사 중단 시 시공사의 결정만 기다리며 일방적으로 조합원들만 피해를 입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정리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공사 중단이지 계약 해지를 위한 공사 중단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조합에서 계약을 해지하겠다면 그에 따라 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이번 사태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조합원이다. 조합이 금융권으로부터 대여하고 있는 이주비 대출 규모는 1조28000 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7000억원의 사업비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라 빌린 돈만 2조원에 달한다. 이자부담만 연간 800억원 규모로 결국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4일 오후, 마지막 공사 일을 마친 한 근로자가 무거운 표정으로 둔촌주공 건축현장을 떠나고 있다.

둔촌주공의 한 조합원은 “둔촌조합원의 평균 나이가 60세가 넘는다. 벌써 전세를 4년 째 살고 있다. 내년에 새집에 들어가 살 것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공사중단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세 계약 기간도 입주시기에 맞추어 놓았는데 어디로 또 이사를 가야할지 걱정”이라며 “시공사에서 조합원들을 옥죄려 이주비 이자도 내주지않아 연금으로 겨우 살고 있는 형편에 어쩔 수 없이 몇 달째 돈을 빌려서 이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 기약도 없이 이자를 더 내야 한다는 생각에 잠도 못잔다”
공사가 중단된 둔촌주공 사업장에 안전모만 덩그러니 걸려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이번 사태는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분양가를 너무 낮게 책정해 일반분양을 못해 조합원도 시공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 정부와 서울시, 강동구가 나서 속히 공사가 재개될 수 있도록 중재에 나서야한다.”고 호소했다.

근로자들이 대부분 떠난 사업현장에 까치들이 새싹이 돋고 있는 은행나무에 부지런히 까치집을 짓고 있다.




14일 저녁 무렵 근로자들이 모두 떠난 사업현장에는 공사중단을 알리 없는 까치들만 새싹이 돋고 있는 은행나무에 나무가지와 공사현장에서 철사를 물어다 부지런히 까치집을 짓고 있었다.

지난 2월 말 촬영한 둔촌재건축 사업장 전경

둔촌조합은 16일 2시, 동북고등학교에서 조합원 총회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한다. 둔촌조합 측은 6천여 조합원 중 14일까지 4천4백여 조합원이 서면결의서를 보냈고 총회 당일에는 4천7백 명~5천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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