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정신건강 연구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미디어를 통한 정신질환 인식개선 방안을 탐색했다. 심포지엄은 △서화연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 교수 △황애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행정원 △김미현 10데시벨 기획단원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발제로 구성됐다.
이해우 단장은 “2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지역사회 정신건강 보호 체계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정보를 얻기 위한 절차가 매우 간편해진 만큼, 정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정신질환과 정신건강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이 확산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미디어와 언론 보도를 통한 정신질환 인식 개선 방안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의 심리적 문턱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발표된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 진단 가능한 정신질환에 이환된 사람 중 10.1%, 최근 1년간 이환된 사람 중에서 단지 7%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상담했다. 이는 캐나다 46.5%, 미국 43.1% 등에 비해서 크게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의 ‘치료격차’ 즉, 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실제 치료를 받는 사람의 격차가 크다는 의미다.
서화연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편견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접근성을 낮추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빅데이터 전문기관과 2016년1월~2019년7월까지 네이버 블로그, 트위터, 카페 등에서 정신과와 연관된 단어를 포함하는 600만건의 글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제도적 불이익으로 분류될 수 있는 단어(34%)가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났다. 사회적 인식을 나타내는 단어(27.8%), 약 부작용과 연관된 단어(18.6%), 치료 비용과 관련된 단어(16.1%)가 그 뒤를 이었다. 연령에 따라 20~30대 젊은 층의 경우 제도적 불이익에, 50대 이상에서는 사회적 인식이 정신과를 방문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 교수는 “사람은 문제를 인식하면 특정 서비스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움 추구 행위’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인식해도 도움 추구 행위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며 “환자들이 도움을 받았을 때의 효과를 고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병원에 방문하기 까지 비용, 사회적 여건, 편견 등 구조적 문제가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질환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 치료 격차를 줄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입이며, 이는 젊은 층에서 더욱 큰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며 “50대 이상에서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교정하기 위한 개입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병과 치료 방식에는 미디어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황애리 선임행정원이 나은영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신문, 방송, TV 등 대중매체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다. 정신질환자 범죄 보도, 과학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기사가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유발했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기사가 급증하고, 기사들이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양상이다.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게재된 기사 중 정신건강과 관련된 단어를 포함하는 기사 1011건을 분석한 결과, ‘자살’이라는 검색어가 가장 빈번히 나타났다. 남성, 성인, 국내 사례가 주로 다뤄졌다. 중립적 논조의 기사가 가장 많았지만, 부정적 논조의 기사가 긍정적 논조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특히, ‘조현병’과 ‘자살’ 등의 단어가 포함된 기사는 대부분 부정적 논조였다.
황 선임행정원은 “범죄에 대한 사실보도는 피할 수 없지만, 특정 정신질환을 범죄 또는 폭력과 연관해 보도할 경우, 그 질환이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범죄에 개입될 수 있다는 편견과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다”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인을 강조한 보도나, 일반인들의 공포심은 낙인과 거부감으로 확산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신건강 관련 언론보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정신건강 이슈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바람직한 보도 방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실제 취재 담당 기자뿐 아니라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등이 언론 준칙을 수립하고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지속적인 협업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환자들의 자발적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미디어를 활용한 정신건강 인식개선 프로젝트 ‘당사자 인권톡(Talk) 10데시벨’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10데시벨 기획단은 정신질환 당사자인 구성원들이 SNS와 언론을 통한 홍보 활동에 나서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있다.
10데시벨 1기 기획단으로 활동한 김미현 단원은 “10데시벨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 출판, 문화 캠페인을 벌이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정신질환 장애인과 환자들은 개인 차가 있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음에도 언론 보도가 정신질환의 위험성과 부정적 측면을 자극적으로 부각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편견을 걷어내고 자존감을 지키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은 ‘자살보도 권고기준’도입 효과에 착안해 정신질환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전홍진 교수에 따르면 자살을 다루는 언론 보도의 변화가 자살률의 변화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018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 1만3799명 보다 781명(5.7%) 감소했다. 앞서 2011년(1만 5906명) 대비 2019년 및 2020년 자살사망자 수는 각각 2107명(13.2%), 2888명(18.2%) 줄었다.
전 교수 연구팀은 ‘자살예방법’과 자살보도 권고기준 시행 이전인 2005년부터 2011년 사이 유명인의 자살 관련 보도가 나간 후 한 달 동안 일반인 자살률은 평균 18% 늘었다. 이는 유명인의 사망 직전 한 달 평균값과 비교한 결과로, 5년간 월평균 자살률과 코스피(한국유가증권시장) 지수, 실업률,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을 모두 반영해도 자살보도가 미친 영향이 뚜렷했다. 하지만 2012년 자살예방법과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차례로 시행되면서 유명인 자살 보도 후 한 달 간 자살률 증가폭이 단계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전 교수는 “힘든 상황에 있는 일반인들이 유명인의 자살 보도를 접하면서 이에 동조하거나 우울증, 자살 생각 등 부정적 요소들이 악화되면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더 쉽고 다양한 경로로 유명인의 자살 관련 소식이 전해지는 만큼, 자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와 협업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을 개발 중이다. 개발 과정에는 서울시와 언론인을 비롯해 대한신경정시의학회, 정신질환 당사자 및 가족 등도 참여했다. 가이드라인은 정신질환 관련 보도에서 사용을 지양하는 용어, 표현 등을 제시하고 지양해야 하는 이유까지 설명한다. 아울러 권장하는 표현을 제시해 가이드라인이 실제 보도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독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의 이미지를 제시해 정신질환 정보에 대한 접근성 향상도 도모했다.
가령 ‘층간소음 호소, 정신병자 취급 말아야’라는 제목의 기사는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층간소음 피해자, 예민한 사람 취급 말아야’로 수정된다. ‘조현병 환자 사이코패스 성향 막으려면’이라는 제목은 ‘일부 조현병 환자… 공격성 유형에 따른 치료 전략 필요’로 순화된다. 정신병자, 사이코패스 등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를 중립적인 표현으로 변경하는 기능이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언론계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신질환 보도 행태 개선의 필요성을 공유했다. 토론회는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 △정심교 중앙일보 기자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구성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정책지원본부장 △노희선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당사자 가족대표단 대표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구 본부장은 정신실환 보도 가이드라인 준수율 제고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언론의 특성 고려해 협력적으로 기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보도의 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기자 대상 교육, 세미나, 우수보도상 등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기자들이 공감하면서도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며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실시간으로 미준수 보도에 대한 수정을 요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편집국장은 “가이드라인의 적용은 기자들에게 정신질환을 범죄가 아닌 도움과 이해의 대상들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약자에 대한 시선이 기계적 중립의 의미일지라도 일단 지침이 있다면, 기자는 이에 기반해 기사를 쓸 것이고 결국 누구의 인권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통의 합의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기자는 “이번에 마련된 가이드라인은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확산하는 언론의 입장에서 정신질환 관련 보도 시 참고할 만한 권장 사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이와 함께 많은 언론인이 정신질환에 대해 깊이 있는 의학상식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교육도 진행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기자는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이 최대한 많은 언론사 기자들에게 제공돼야 하고, 한시적으로라도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고, 수정을 요청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소망은 정신질환이라는 병을 갖고 있지만, 작은 일이라도 능력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아픈 사람을 위한 작은 배려만 보여줘도 충분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성, 당사자와의 소통을 언론계에 촉구하며 “건강한 사회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