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서 한국어 연설…BTS, 혐오에 맞서다

백악관서 한국어 연설…BTS, 혐오에 맞서다

기사승인 2022-06-02 14:55:57
백악관에서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과 그룹 방탄소년단. 백악관

“대통령님,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RM)
“백악관에 온 걸 환영합니다. 이쪽으로 올라오세요.”(조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증오’를 화두로 던지자 그룹 방탄소년단은 “(증오를 없애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더하고 싶다”고 답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과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나눈 대화다. 백악관은 ‘아시아계 미국인·하와이 원주민·태평양 도서 주민(AANHPI) 유산의 달’을 기념해 방탄소년단을 초청했다. 한국 가수가 백악관을 방문한 첫 사례다.

“증오를 얘기하면 증오는 가라앉을 것” “도움 되고파”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와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계 대상 혐오범죄와 해결 방안 등에 관해 35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들이 차별받고 있다”며 “선한 사람들이 증오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얼마나 나쁜지를 말한다면 증오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했다. RM은 멤버들을 대표해 “우리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아시아 증오범죄를 해결하려는 미국 정부와 백악관에 노력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환담을 마친 후 SNS에서 “반(反)아시안 증오 범죄와 차별에 관심을 높여준 방탄소년단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바이든 대통령과 중요한 사안을 논의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고 화답했다. 멤버들이 공개한 기념사진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엄지와 검지를 붙여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일명 ‘K-하트’다. 멤버들은 환담을 마친 후 바이든 대통령에게 기념주화를 선물 받았다고 소속사는 설명했다.

백악관 브리핑룸을 찾은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다른 것이 잘못된 건 아냐”…백악관에 울려 퍼진 한국어 연설

방탄소년단은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전 백악관 브리핑룸을 찾아 한국어로 연설했다. 멤버들은 “최근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많은 증오 범죄에 놀랐고 마음이 안 좋았다. 이런 일이 근절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지민)며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평등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슈가)고 말했다. 뷔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존재로서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또 한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백악관 방문이 여러분에겐 어떤 의미냐” “월드투어는 언제냐” 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막았다. 방탄소년단이 자리를 뜰 땐 한국어로 “방탄소년단 파이팅! 감사합니다”라는 응원이 나오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장에 마련된 49개 좌석은 일찌감치 꽉 찼다. 통로 역시 방탄소년단을 보려는 기자들로 붐볐다. 백악관 인근에는 아미(방탄소년단 팬덤) 수백 명이 모여 “아시아계 증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라고 외쳤다. 기자회견이 생중계된 백악관 유튜브 채널에는 한때 31만 명 넘는 누리꾼이 동시 접속했다. CNBC는 “방탄소년단이 없었던 지난 26일 브리핑의 유튜브 조회수는 1만6000회도 되지 않는다”면서 “방탄소년단이 떠난 지 몇 분 만에 20만명 넘는 시청자가 생중계 채널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근처에 모인 아미들은 방탄소년단을 연호하고 아시아계 증오범죄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P·연합뉴스

방탄소년단, 혐오에 맞서다

방탄소년단은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왔다. 지난해 3월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한인 여성 4명 등 8명이 희생되자, SNS에서 해시태그 ‘아시아계 혐오 반대’(#StopAsianHate), ‘아시아·태평양계 혐오 반대’(#StopAAPIHate)를 달고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파급력은 강했다. 해당 글이 게시된 지 2시간여 만에 SNS에선 ‘아시아계 혐오 반대’를 외친 글이 92만건 가까이 쏟아졌다. 방탄소년단은 2020년 흑인 인권 운동 단체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중요하다)에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번 백악관 예방은 방탄소년단이 민간 외교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짚었다. 방탄소년단이 전파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가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정 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은 다양성과 포용을 꾸준히 얘기해왔고, 아미는 이런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서로 연대하며 일종의 문화운동을 벌이는 집단으로 성장했다”면서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영향력을 눈여겨본 바이든 정부가 반아시안 증오 범죄를 근절할 카드 중 하나로 이들을 초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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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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