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대체 왜 수리남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수리남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수리남’은 1회에서 이 질문들에 빠르고 정확하게 답한다. 강인구(하정우)가 왜 수리남에 가야 했는지, 가서 대체 뭘 하는지, 왜 전요환(황정민)과 대치할 수밖에 없었는지.
‘수리남’은 실화를 바탕으로 평범한 한 남자가 어떻게 기록되지 않은 영웅으로 남았는지 보여주는 드라마다. 이국적인 풍광 아래 펼쳐지는 마약상과 폭력배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몇몇 미국 드라마가 스쳐 지나간다. 이번 추석 연휴 가장 기대작으로 꼽히는 ‘수리남’을 시청자들은 어떻게 봤을까. 공감하는 시청자가 있길 바라며, 쿠키뉴스 대중문화팀 기자들이 각자 본 ‘수리남’ 감상평을 전한다.
진실의 순간을 들여다보게 하는 건
어느 순간부터 ‘수리남’은 훤히 보이는 결말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강인구(하정우)와 전요환(황정민)이 벌이는 이야기를 꼬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춘다. ‘수리남’은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가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순간들에 집중한다. 몇몇 순간들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온 힘을 모은다. 배우들의 연기와 긴장감이 폭발하는 것도 그 장면들이다. 윤종빈 감독이 전작 ‘공작’에서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감독에게 영화는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나 교훈을 전하는 수레가 아니다. 관객이 직접 그 안에 있는 영화적 진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마법의 거울이다. 감독이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이게 진짜 영화이지 않냐고. 6편으로 나눈 6시간 분량의 영화를 본 시청자들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각자 찾아낸 답에 따라 ‘수리남’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여자도 연기할 줄 알아요
‘수리남’은 기이할 만큼 남자들로만 채워진 세계다. 주인공 강인구(하정우)를 중심으로 악당 전요환(황정민), 조력자 최창호(박해수), 경쟁자 첸진(장첸) 등 주요 인물과 그 일당까지 죄다 남자, 남자, 또 남자들뿐이다. 배우 추자현과 이봉련이 각각 강인구 아내와 전요환의 신도로 등장하지만 존재감이 약하다. 캐릭터가 워낙 평면적으로 설계된 탓이다. 두 배우가 tvN ‘작은 아씨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특별 출연해 보여준 활약을 떠올리면 더욱 아쉽다. 이마저도 배역 이름조차 얻지 못한 다른 여자 배우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들 대부분 향락에 찌든 ‘마약왕’ 전요환의 사치스러운 일상을 표현하는 병풍으로 소모된다. 당초 영화로 기획된 작품을 6부작으로 늘려 이야기가 느슨해진 와중에도 여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2022년에 가당키나 한 설정인가 의아하던 찰나, 감독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윤종빈. 영화 ‘공작’, ‘군도:민란의 시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비스티 보이즈’ 등 고집스러울 정도로 남자들만의 세계를 그려온 감독. 혹시나 윤 감독이 모를까 싶어 덧붙인다. 감독님, 여자도 연기할 줄 알아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있기는 한데…
화려한 작품이다. 배우도, 감독도 전작이 대단하다. 이들이 뛰어노는 무대는 OTT 공룡 넷플릭스. 휘황찬란한 포장지에 알맹이도 알차다. 분명 알찬데… 거기까지다. 넷플릭스 ‘수리남’은 뻔하다. 좋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새 캐릭터들임에도 묘한 기시감이 든다. 여기에, 첫 시리즈물을 연출한 감독의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보인다. 이야기를 쓸 땐 먼저 캐릭터들을 구축하고 각자 서사를 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배경지에서 펼쳐지는 캐릭터들의 화학작용을 그려내는 게 영화 아닌가. 하지만 ‘수리남’은 주요 얼개 너머에 있는 서사도 보여준다. 주인공 인구(하정우)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 그와 얽히는 인물들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모든 게 담겼다. 그러다보니 속도감이 애매하다. 전개가 느리진 않은데, 왠지 처진다. 시리즈물이라 해서 모든 걸 다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재미가 없진 않다. 그런데 선뜻 추천하긴 애매하다. 게다가, 감독의 영화가 흔히 그랬듯 벡델 테스트에선 낙제점 수준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화두로 품은 지금 사회에서 OTT 시리즈물에 익숙한 대중을 상대로, ‘수리남’은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까.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