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최민식 “저는 저대로 살 뿐이에요” [쿠키인터뷰]

‘카지노’ 최민식 “저는 저대로 살 뿐이에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3-28 06:00:06
배우 최민식.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15년 필리핀 아길레스. 한눈에 봐도 불량스러운 두 사내가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권무십일홍이라고 아세요, 형님? 꽃이 열흘 동안 붉을 수 없다. 그런 뜻이죠.” “권무가 아니고 화무십일홍. 꽃을 권력에 비유한 말이야, 인마. 책 좀 봐. 권력이고 인생이고 다 무상하다, 이런 뜻이야.” 대화는 복선이다. 형님이라고 불린 사내는 훗날 동생 손에 죽음을 맞는다. 지상에서 먹는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붉은 꽃을 꽃병에 꽂는다. 사내의 앞날을 예견한 듯 이미 시들시들한 꽃이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카지노’가 지난 22일 마지막 화를 공개했다. 돈과 권력에 취해있던 차무식(최민식)의 최후는 허무할 만큼 비참했다. 카지노 제왕을 무너뜨린 건 총알 하나. 그것도 자신이 오른팔처럼 부리던 양정팔(이동휘)가 쏜 총알 한 방에 차무식의 다사다난했던 삶이 저물었다. 배우 최민식은 차무식의 결말이 “꽃잎 떨어지듯” 맺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총을 맞고도 다시 살아나면 너무 ‘모냥’(모양) 빠지지 않겠어요?”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화무십일홍을 언급한 첫 대사가 좋았어요.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거죠. 욕망에 미쳐 날뛰던 차무식의 결말은 그렇게 느닷없이, 꽃잎 떨어지듯 다가와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시들한 꽃을 준비해 달라고 했어요. 강윤성 감독이 제 의도를 알았는지 카메라로 꽃을 잡아주더라고요.”

디즈니+ ‘카지노’ 스틸.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997년 MBC ‘사랑과 이별’ 이후 25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최민식은 “진하게 연애한 기분”으로 ‘카지노’를 찍었다고 한다. 촬영은 고됐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후유증으로 후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데다 필리핀의 열대 기후도 견뎌야 했다. 그런데도 배우들은 호텔에 틀어박혀 “고시 공부하듯” 캐릭터 연구에 열을 올렸다. 진심이 전해진 걸까. 디즈니+에 따르면 ‘카지노’ 시즌2는 디즈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최대 시청 시간(공개 첫 주 기준)을 기록했다.

인기 중심엔 차무식이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깡’과 기세로 어둠의 세계를 평정한 그는 쉽게 정 붙이기 어려워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최민식은 차무식을 “평범한 남자”로 봤다. “평범한 남자가 돈과 권력을 좇아 손아귀에 쥐었으나, 빈틈 몇 개 때문에 종말을 맞는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힘없는 소시민부터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까지 다양한 캐릭터로 자신을 칠해온 대배우는 “100% 착한 사람, 100% 나쁜 놈이 어딨겠나”라며 “차무식이 상징화된 악당이었다면 ‘카지노’에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최민식.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개 시즌, 총 16부작으로 기획된 ‘카지노’엔 한국과 필리핀 배우 170여명이 참여했다. 대부분 ‘최민식 선배가 나온다는데…’라며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전하자 최민식은 민망한 듯 웃었다. “프로 배우들 사이에서 나이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저도 저 살려고 (연기)하는 거예요. 허허허.” 35년 차 연기 거장은 한사코 자신을 낮췄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저는 그저 저대로 살 뿐이에요. 현장에서도 그래요. ‘똑바로 해, 얌마’라고 가르칠 게 아니라 그냥 제가 똑바로 하면 돼요. 제가 남에게 잘 보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국회의원 될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에게서 소탈한 품격이 엿보였다.

최민식은 최근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 촬영을 마치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요즘 그의 구미를 당기는 건 로맨스다. ‘카지노’에서 23년 만에 재회한 배우 이해영에게 러브콜을 보냈단다. 진영희를 연기한 배우 김주령과는 함께 연극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환갑을 넘긴 배우는 열정으로 들끓었다. 그는 “다양한 작품과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진다. 자극적이거나 작위적인 작품 말고 따뜻하고 치유가 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 코미디도 하고 싶어요. 이혜영이랑 둘이. 중년 남녀가 만나서 쿵짝쿵짝 하는 코미디 웃기지 않겠어요? 여러분이 소문 좀 많이 내주세요. 하하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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