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박찬욱 감독이 좋은 영화의 기준과 한국영화의 현주소, 앞으로 전망을 두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21일 넷플릭스가 개최한 ‘넷플릭스&박찬욱 with 미래의 영화인’ 행사가 온라인 생중계됐다. 현장에 자리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와 박찬욱 감독은 “지금 시대는 이야기꾼들에게 황금기”라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박찬욱 “제작비 협의 잘 됐다”
이번 행사는 박찬욱 감독이 넷플릭스에서 새 영화 ‘전, 란’(감독 김상만)을 제작한 걸 계기로 마련됐다. 현재 박찬욱 감독은 HBO 시리즈 ‘동조자’ 촬영을 마치고 편집 단계를 밟고 있다. 이외에도 제작을 맡은 ‘전, 란’과 이경미 감독 신작 등 세 작업을 동시 진행 중이다. 박 감독은 ‘전, 란’ 각본을 2019년에 완성해 이달 초 제작에 착수했다. 그는 “무협 액션 사극은 어느 정도 제작규모가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넷플릭스와 이 부분에서 협의가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옥자’(감독 봉준호) 이후 한국 콘텐츠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테드는 “넷플릭스는 좋은 스토리텔러에게 최대한 지원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제작모델을 갖추고 있다”면서 “훌륭한 아티스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게 넷플릭스의 존재 이유다. 앞으로도 이들과 팬덤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힘은 고전에서부터”
이날 박 감독과 테드가 입을 모아 강조한 건 고전의 힘이다. 이들은 과거 비디오대리점을 운영하다 각각 감독과 플랫폼 기업가로 진로를 틀었다. 두 사람은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꾸준히 본 좋은 영화 덕”이라며 “고전 및 예술 영화를 보면 황금 같은 통찰력이 생긴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각자 좋은 영화를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하거나 현실세계를 잊게 하는 탈출구를 만들어주는 영화”(테드), “나와 다른 사람과 세계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연결해주는 영화”(박찬욱)로 정의했다. 박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명확한 비전을 꼽았다. 그는 “통찰력을 가진 감독과 제작진이 서로 교류하며 영감을 받고 단일한 비전을 향해 끌고 가야 한다.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공감하게 하는 비전이라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힘은 격동기에서 나온다”
박 감독은 한국영화가 인기인 이유를 근현대사에서 찾았다. 일제강점기를 비롯해 전쟁과 독재정권 등을 거치며 시청자 취향이 영향 받았다고 봐서다. 박 감독은 “너무 많은 일을 압축적으로 겪으며 바람 잘 날 없는 세상을 살다 보니 웬만한 자극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면서 “진폭이 큰 감정을 담으면서 기쁨, 슬픔, 웃음 등을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하게 아우르는 게 한국영화 특징이다.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는 점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하는 것 같다”고 짚었다. 테드는 “과거보다 표현의 자유가 생긴 덕에 한국 내에서 창조적인 공동체가 생겼다. 그 덕에 평단과 관객 모두가 호평하는 영화가 나온 것”이라면서 “자국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국인의 사회 인식이 영화계 발전으로도 이어졌다”이라고 평했다.
“패러다임 달라져도 영화산업 미래는 밝다”
전염병 창궐부터 OTT 플랫폼이 대두하며 산업 구조가 급속도로 변화하자, 영화산업을 두고도 다양한 전망이 나왔다. 넷플릭스는 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점쳤다. 기술 발전이 영화의 질적 성장에 기여한다고 봐서다. 테드는 “기술이 다양해지면서 선택지가 늘어났다”면서 “영화 산업에 뛰어들기 좋은 시대인 만큼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성장할 여지도 많아졌다고 본다”고 확언했다. 박 감독은 앞으로의 영화산업에 관해 “다양성이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과거와 달리 전문가가 아니어도 제작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높이 샀다. AI 알고리즘의 취향 분석 기능 역시 긍정적으로 봤다. 박 감독은 “우연히 본 영화를 기점으로 다양한 가지를 뻗어갈 수 있는 세상이다. 과거보다 개개인의 영화 세계를 넓히기 용이해졌다”면서 “스마트폰으로 만든 영화가 개봉하는 시대지 않나. 전문가가 아니면 더 기발한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할 수 있다. 다양한 영화가 더욱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