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한 주택에 혼자 살던 이상엽(65·여)씨에게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대학생 한지은(20대·여·가명)씨다. 한씨는 지난 3월부터 이씨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까닭은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에 있다.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한지붕 세대공감은 주택을 소유한 노인이 남는 방을 대학생에게 싼 가격에 임대하는 정책이다. 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신청 건수가 감소했다가, 최근 대면 수업이 활성화되고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신청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60세 이상의 노인은 각 자치구 담당 부서로 문의해 집을 내놓을 수 있다. 학생은 시 주거 포털 홈페이지에서 매물 정보를 확인한 뒤 신청한다. 신청 시 작성하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주택 담당자가 원하는 조건의 방을 찾아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한씨와 이씨는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 됐다.
세입자는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살면서 주거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한씨가 사는 동작구 대학가의 원룸은 보증금이 평균 500~1000만원, 월세는 50~60만원 정도다. 한씨는 현재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 관리비 5만원 총 30만원에 살고 있다. 한편 집주인인 이씨는 남는 방을 내놓아 월세를 얻어 가계 수입에 도움을 얻는다.
생활 환경도 쾌적하다. 한씨의 방에는 침대와 책상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까지 갖춰져 있다. 한 사람이 지내기에 꼭 필요한 가구와 집기가 준비된 것이다. 또한 한씨가 사용하는 방은 리모델링 공사를 거쳤다. 이씨가 해당 사업 신청 후 서울시에서 공사 비용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래된 장판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동거인이 생겼다는 사실은 두 사람에게 위안이 됐다. 이씨는 “집에서 사람 소리가 나니까 좋다”며 “무슨 일이 생기면 알아차릴 사람이 있다는 게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안정감을 느끼는 건 한씨도 마찬가지다. “나를 맞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든든하다”는 한씨는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음식 냄새가 나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만족해했다.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이씨와 한씨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다. 이씨는 김치를 좋아하는 한씨에게 직접 만든 오이소박이를 챙겨주고,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벌레를 한씨 대신 잡아주기도 한다.
반대로 한씨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씨의 아버지가 집을 방문했을 때 화장실 물마개가 고장 난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 자리에서 교체해줬다. 이씨는 “고마운 마음에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며 받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한씨가 참외를 집으로 가져온 적도 있다. 한씨는 ‘친척 집에서 참외를 가져와 부엌에 두었으니 드세요’라고 이씨에게 문자를 남겼다. 이씨는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고 한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다음날 이씨는 보답으로 계란을 구워 한씨에게 건넸다. 한씨도 ‘잘 먹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가벼운 대화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는 유대감이 쌓였다.
한씨와 이씨는 모두 한지붕 세대공감 사업에 계속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학생이 먼저 살갑게 대해줘 정이 많이 들었다”면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씨도 “가끔 일찍 들어가면 과일이나 반찬을 챙겨주시는 등 신경을 많이 써 주신다”며 “같이 있는 시간에는 함께 삼겹살도 구워 먹고, 인생 얘기하면서 하하 호호 웃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씨는 “낯을 많이 가리거나 자기만의 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경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현 쿠키청년기자 ahkim1229@naver.com